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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Nov 06. 2024

5월과 10월의 상관관계

11월입니다. 10월은 이제 고개를 숙여주세요.

  5월과 10월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식도에 주먹을 밀어 넣고 다 토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쓰는 것이 체력을 아끼는데 더 도움이 되기에 이 방법을 택합니다. 어쩌면 10월 내내 쓰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갈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에 자꾸 왼쪽 갈비뼈 끝자락이 시립니다. 엄마는 네 식습관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일부러 망가지는 사람에게 아프다는 투정은 사치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부렸던 사치가 자꾸 나를 짓무르게 합니다. 점점 납작해져 가요. 잔뜩 눌린 뒤통수가 시큰거립니다.


  언제까지 나 자신에게 과한 관심을 보여가며 힘겨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나의 오랜 습관입니다. 어릴 적 작은 찰과상이 생기면 상처 부위를 꾹 눌렀습니다. 엷게 고인 피가 흘러나오면 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상처가 적나라해질수록 더 울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사람처럼요.


  이젠 내가 진짜 아픈 건지 아픈 척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는 것도 관성이 되나 봅니다. 요즘 금세 눈가가 축축해집니다. 어릴 적 상처를 짜내듯, 눈가에 아른거리는 눈물에 집중합니다. 한 줄기가 겨우 흘러내립니다. 그러면 아직 아파도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고 하는데, 네. 어렵습니다. 한 번이 어려웠던 만큼 두 번이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참 기억이 좋습니다. 기억은 나를 지배합니다. 고작 이야기 따위에, 나는 여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더는 고통을 기록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백하자면, 지난하게 기록했던 고통을 다시 기록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다른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5월과 10월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그만 말해야 합니다. 꽃잎을 떨군 벚나무에 부는 달큰한 봄바람. 설익은 은행을 떨구게 만드는 구수한 가을바람. 나는 그 바람 앞에서 헐벗은 나뭇가지가 됩니다. 속에서 마른 가지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겨우 눈물 한줄기를 매달고 중얼거립니다. 차라리 빨리 찌는 더위를 주세요. 빨리 살갗이 어는 추위를 주세요. 애매한 간절기가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니까요. 아, 다시 5월과 10월에 대한 얘기를 해버렸습니다.

  더는 입 밖으로 5월과 10월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입에서 새어나가면, 화장실 칸에 들어가 주먹을 입에 쑤셔 넣어야 합니다. 쓰면서도 목구멍이 시큰거립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쓰는 동안 11월이 찾아들었다는 겁니다. 맑아진 서글픔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진 먼지투성이의 고통을 조금 정화시킵니다. 11월이니, 10월은 고개를 숙여주세요. 이젠 간절기의 잔뜩 눌린 뒤통수만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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