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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Dec 16. 2024

결혼, 플러팅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


동료 A는 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남편 얘기다. 출근할 때 한 번, 점심 먹으면서 한 번, 퇴근 전에 한 번. 요즘은 주제가 남편의 리액션이다. "우리 남편은 대답을 안 해요. 내가 뭐라 해도 그냥 음, 흠, 그렇군만 한다니까요. 그냥 벽이에요. 벽."


말을 뱉는 A의 입은 분주하지만, 그 옆에서 듣는 B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일 뿐이다. 그 웃음 속에는 "우리가 뭘 어쩌겠어"라는 체념과 약간의 동정이 섞여 있다.


B 동료가 묻는다.  "근데 말수가 적은 건 결혼 전에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A는 손을 휘저으며 반박한다. "알긴 알았죠. 근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요! 연애할 땐 그래도 맞장구도 쳐주고, 어우~ 리액션도 장난 아니었거든요."  

A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된다. "결혼하고 나니까 사람이 그냥 변하더라니까요. 아니, 아니, 이건 변한 게 아니고, 애를 키우다 보니까 지쳐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근데 아니야. 내가 독박육아잖아요? 내가 키우고, 이제 나는 돈도 벌고, 육아는 내가 다 하는데 왜 대답까지 내가 해야 하냐고!"


연애와 결혼은 확실히 다르다. 연애 기간 동안 A의 남편은 그가 가진 모든 리액션의 재능을 쥐어짜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우와!" 같은 말을 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았겠지. 그런데 그 모든 에너지를 결혼 전에 소진한 게 문제였다. 원래 성격이 조용한 사람이라면, 평생 동안 연애 모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목표 달성"이나 "완성"으로 여겨 플러팅과 같은 노력을 멈추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언제나 움직이고, 변화하고, 무엇보다 관리가 필요하다. 결혼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꾸고 발전시키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즉, 결혼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드는 새로운 시작일 뿐, 호감을 표현하거나 관계를 관리하는 노력을 멈춰도 되는 시점이 아니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섬세하다.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관리해야 한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긴 여정의 첫걸음이다. 지구력이 중요하니까, 지금 이 순간 내 예비 배우자가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고 있는지보다, 이 긴 여정을 함께 떠날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사실 A의 남편이 왜 "음, 흠, 그렇군"만 반복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결혼 전에 이미 말수가 적었던 사람이다. 결혼 후 "말 없는 사람"에서 "거의 벙어리 수준"으로 진화한 이유가 피곤해서인지, 혹은 원래 성격인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A의 이야기를 듣는 B와 나 역시 이 상황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음, 흠, 그렇군" 수준의 반응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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