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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by tangerine

“아, 옆으로 가서 해!”

그냥,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말이 떨어지고 나서, 마음 한쪽이 불쾌하게 저렸다.

아, 실수다. 이 말투는 내 엄마다.


나르시시스트인 나의 엄마는 뭐든 자기 방식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그게 말일 때도 있었고, 눈빛일 때도 있었고, 그냥 침묵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걸 어린 시절 내내 받아냈고,
그러다 언젠가부터 내 말과 행동에도 그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문득 겁이 났다.

내가 엄마처럼 굴고 있지는 않나?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를 닮아버린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편 옆에 앉은 뒤 조용히 말했다.

“오빠. 아까는 그렇게 짜증 내듯이 말해서 미안해. 나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

이 한마디를 꺼내는 데에도 시간이 10분이나 걸렸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를 끊은 지 꽤 됐다.

연을 끊고 나면 모든 게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엄마는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문다.

특정한 말투, 억양, 누군가를 무시하는 태도 같은 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마다 내 안 어딘가에 엄마가 살고 있구나 싶다.


예전엔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건 내가 엄마한테 너무 오래 영향받았기 때문이고, 그 시간이 내게 남긴 흔적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고쳐나가면 된다고. 사과할 줄 아는 나는, 엄마와는 다르다. 미안하다고 말한 뒤에 마음이 후련해졌다는 걸 느낀 나도, 엄마와는 다르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보다 나은 사람이다.


엄마를 닮았을지 모른다는 불안보다, 그걸 알아차리고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이제는 더 크다.


엄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면서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비난하거나, 엄마 탓을 하지 않는다.

왜 나에게는 이런 엄마가 있어서 이렇게 늘 말실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연을 끊은 이후, 나 자신에 대해 사유할 여유가 생겼다.


나 스스로를 아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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