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다가 울컥했다.
한 브이로그에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엄마 집에 내려간다.
엄마는 생선을 굽고, 딸이 먹기 좋게 가시를 발라 놓는다.
딸은 중간에 투정처럼 말한다.
“엄마, 가시 나왔어.”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멈췄다.
부러웠다.
우리 엄마도 가시를 발라줬다.
정성껏, 손끝으로 살을 바르고, 손등을 닦아가며 생선을 앞에 놔줬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가시를 씹었다고 말이라도 하면 —
엄마는 생선 가시 보다 더 날카롭게 날 찔렀다.
“그런 건 조용히 처리해야지. 엄마가 힘들게 구워주고 발라줬는데,
하나도 고맙지도 않구나?
가시 나왔다고 그렇게 투정 부리면 엄마는 뭐가 되니?”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가시가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가시보다 더 두껍고, 더 깊게 들어오는 감정.
나는 가시를 뱉는 대신, 이걸 티 내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항상 날 그런 식으로 가만히 흔들었다. 날 바르게 키우기 위한 애정인 줄 알았던 말이 알고 보면 조용한 비난이었다는 걸, 꽤 늦게 알았다.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시절도 늘 그런 식이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은 늘 내 탓이었다.
회사는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버티다가 깨져서
가끔, 아주 가끔, 엄마 밥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진짜 밥이 아니라, 뭐랄까.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내 얘기를 들어주는 엄마랑 먹는. 그런 식사.
성희롱이 섞인 말을 들었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군다고, 내가 요즘 힘들다고 말하면,
엄마는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렸다.
“너가 뭘 잘못했겠지.”
“원래 다 그런 거야, 회사라는 건.”
“너가 제대로 했어야지. 참아야 해. 니 표정관리 못 하는 게 다 엄마 욕 먹이는 거야.”
“그런 말을 들었다는 건, 너가 만만하거나 쉽게 보이진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하는 거야.”
나는 취업 이후 조개처럼 입을 닫았다.
“됐어, 엄마랑 이야기 안 해.”
그렇게 말이라도 하면, 엄마는 곧장 화를 냈다.
엄마 말에 바락바락 대든다고. 넌 어른을 무시하는 경솔한 아이라고. 자기가 날 잘못 키웠다고 했다.
정작 그녀는 그 말들을 자기 입으로 ‘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도 했다.
그 말이 가장 잔인했다.
결혼 전, 연애 중 남편은 생선을 내 접시에 올려주며
“살이 부드러워 보이길래”라며 웃었다.
그 생선에서 가시가 나왔다.
나는 조용히 휴지에 싸서 치웠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내가 놓친 게 있었나 보네. 미안. 여기 편하게 버려, 가끔 그럴 수도 있지 뭐.”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속이 아렸을까.
남편은 기억도 못하는 식사가 나에게는 매우 큰 기억으로 남았다.
누구와의 식사에서는 생선에서 가시가 나왔다고 말할 수 있고,
누구와의 식사에서는 그 한 마디로 인해
끝없는 죄책감과 자책, 그리고 눈치를 불러오는 대화로 끝날 수도 있다.
내가 자취를 하기 전 엄마와 살 때 매우 말랐었던 건 어쩌면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끝은 더 큰 상처로 끝날 대화임을 알면서도
난 바보처럼 늘 엄마가 묻는 ‘별일 없냐’는 말에 홀려
혹시나 하고, 정상적인 엄마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위로를 바라며 나의 불행한 일들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렇듯
나와 엄마는 식탁 앞에서 그런 대화를 많이 주고받았고,
나는 지금도 식탁 앞에서 딸이나 아들이 엄마에게 위로를 받는 장면을 보면
머리가 아프고, 목 안이 까끌해진다.
질투가 난다.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서 아직도 질투가 마구 샘솟는다.
대신 남편을 얻었으니, 나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르로 고생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인연과 반드시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법칙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나르로 고생한 모든 사람들은 나르와 거리를 두고,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꼭 보내길 바란다. 정말 삶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꽤나 살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