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볼 필요 없는 일상
나는 결혼 한 이후에 “미안해”라는 말을 남편에게 많이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 나쁠 건 없지만, 내가 모든 것에 미안해하자 하루는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내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신경 쓰고 불필요하게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남편의 말로 인해 깨달았다. 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새끼 나르시시스트 언니와 오랜 기간 지내다 보니, 그들의 이유 없는 분노와 짜증 때문에 늘 눈치를 살피며 지내야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그들과 손절하고 연을 끊은 이후, 남편과의 생활에서도 사소한 것에 늘 눈치를 봤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새끼 나르 언니는 늘 사소한 것으로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냈다.
티비를 보다가 실수로 전원을 끄거나, 가스 밸브를 깜박하고 잠그지 않거나, 외출을 하기 전 화장실에 두고 온 핸드폰을 다시 가지러 들어갔는데 하필 그때 나르시시스트 엄마나 언니가 화장실 세면대를 쓰고 있을 경우. 그들은 늘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에이~씨. 빨리 티비 다시 틀어. “
”넌 가스 밸브를 안 잠그고도 불안하지가 않냐? “
“물건 좀 제대로 가지고 다녀. 출근 준비 해야 하는데 짜증 나게 하지 말고.”
휴지가 다 떨어져서 휴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거나, 책에 실수로 커피를 쏟았을 때, 배달 음식을 주문했는데 실수로 일회용품을 선택하지 않아서 일회용 수저가 오지 않았을 경우.
“휴지가 떨어지면 미리미리 채워 놓던지 해야지 다른 사람 귀찮게 하면 넌 미안하지도 않아? “
“아, 미쳤어? 빨리 닦아! 아씨 이거 어쩔 거야!”
”너는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냐. 도대체 뭘 믿고 맡길 수가 없어 주문하나도 제대로 못하냐? 가서 빨리 일회용품 사 오던지 해! “
창문을 열어 놓고 외출을 했는데 소나기가 와서 빗물이 집 안에 들어온 경우.
“너는 왜 문을 열어 놓고 가서 일을 만드냐?”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는데, 나르 엄마나 새끼나르가 설거지를 하고 있어서 정수기에 가기 위해 비켜달라고 할 경우.
”아. 좁아 죽겠는데 꼭 지금 물을 마셔야 해? 이거 얼마 안 남은 거 안 보여? 좀 기다릴 수는 없어 너는? “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나르 엄마나 새끼 나르가 물을 먹기 위해 정수기를 써야 하는 경우.
“너는 꼭 아침에 물 마실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하니? 이 아침부터 설거지를 그렇게 자리 차지하고 해야겠어?”
이 모든 상황들이 본인들의 일이 될 경우에는, 그들은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관대해졌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새끼나르 언니는 자신들이 무언가를 깜박하고 실수를 하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나에게 부탁을 할 경우에는 늘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해도 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집 투 나르들은 늘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내가 “감히” 의견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엄마 언니가 하는 말에 짜증이 나거나, 기분이 나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심지어는 엄마나 언니가 잘못한 게 명백해도! 그 순간 엄마나 언니가 화가 났다고 하고 화를 내면 넌 그냥 찍 소리 말고 들어! ”
”그게 예의고! 그게 어린 사람의 도리야! “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5살 많은 남편과 살고 있는 지금, 나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과 이런 비슷한 대화조차 나눈 적이 없다.
깜빡하고 남편의 부탁을 잊어도, 남편이 세면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내가 ”잠깐만~”이라고 하며 칫솔에 물을 적셔도, 문을 열어 놨는데 비가와도, 무언가를 부탁해도, 매일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어디 있는지 찾아다녀도, 남편이 요리를 하는데 그 아래 서랍에서 물건을 잠깐 빼겠다고 말해도, 책에 커피를 쏟아도, 남편의 다리에 물을 쏟아도.
같은 상황에서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새끼 나르 언니가 보인 반응과 한 말들과 다른 반응과 말이 따라왔다.
남편은 늘 “잘했어~ 괜찮아. 더 해도 돼 더.”라고 말한다.
고마웠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안심이 되는 말인 줄 몰랐다.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별일이 아니라고 하니, 나에게도 별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이전보다는 덜 불안해하게 되었다. 문제가 생겨도 “괜찮아, 해결해 보자.” 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 언니와 같이 살지 않게 되면서, 정확히 말하면 그들과 손절하고 더 이상 교류 자체를 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이전에 비해 짜증과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같이 사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결혼 이전에는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르 엄마와 새끼나르 언니는 아직도 서로를 비난하고 비아냥 거리는 말들을 토해내다가 멀어지고, 그러다가 외로워지면 주변 지인들 혹은 자신들을 손절한 내 욕을 하면서 낄낄거리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웃으면서 대화 하다가 실수로 물을 쏟으면, 서로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멀어지겠지.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 들은 나르들이 지옥에 가길 바라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가 만든 지옥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