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비가 퍼붓고 번개가 수백 번 치던 밤이 지났다. 사실 남편이랑 싸워서 거실에 누웠는데도, 창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아침까지 푹 잤다. ‘까톡!’ 독서 모임의 청일점, 우주쌤이다. 단톡방에 짧은 영상을 보내왔다. 새벽에 찍었단다. 우와! 아름다웠다. 밤 도시의 건물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불빛, 어두웠다 환했다 움직이는 하늘빛, 까만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의 하모니. ‘죄를 많이 짓긴 했나 봐요. 동영상 찍으면서 번개 맞을까 봐 두렵더라고요. 저 착하게 살게요. 기도 부탁드립니다.’ 우주쌤답다. 나랑 선영쌤이 교회 가는 일요일이라 늘 유머 넘치는 그가 재치 있게 문자를 올린 거다. ‘동영상 예술입니다요. 선영쌤이 해 줄 거예요. 저는 기도빨이 없어서.’ 답글은 그렇게 썼지만 나도 기도발이 없지는 않다.
‘기도’하면 바로 떠오르는 추억이 두 개 있다. 한 번은 열두 살 무렵,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였다. 선생님이 낫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다. 오후에 학교 언덕의 풀을 벤다나? 워낙 섬이 작아 4교시 수업이 끝나면 점심은 집에 가서 먹는데, 어른들은 일하러 갔는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숙자랑 만나서 공기놀이를 했다. 점심시간은 소중한 놀이시간이었으니까. 학교까지는 뭐, 1분이면 충분히 뛰어간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출발하려는데 ‘낫’ 생각이 났다. 헛간에 찾으러 들어갔다. 맙소사! 없다. 구석구석 다 들추고, 열어 보았다. 왜 없지? 식은땀이 났다. 엄마, 아빠가 다 가지고 갔나? 가서 혼날 일이 아득했다. 미리 살펴보고 옆집에서라도 빌려 놓을 걸. 준비성 없이 놀기만 한 게 후회막심이었다. 혹시나 놓친 곳이 있을까 해서 아까보다 더 빠르게 다시 한번 틈 하나까지 뒤졌다. 진짜 없다. 어떡하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너무 다급하니까 하나님 생각이 났다.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발 낫을 주세요.’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이거 환상은 아니겠지? 눈을 여러 번 끔뻑끔뻑해 본다. 바로 눈앞 벽에 걸려 있는 건 분명히 낫이다. 맹세코 아까는 없었다고! 이거 아무도 안 믿을 텐데? 내 기도를 들어주시다니,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위를 올려다보며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낫을 들고 빛보다 빠르고 가볍게 학교로 달려갔다. 교문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외는 ‘국기에 대한 맹세’도 어쩐지 더 가슴 벅찼다. 앞으로 하나님을 더 잘 믿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살던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이미 네 개의 동아리 활동을 하고, 밤이면 술자리에서 안주를 축내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었던 내게 선배들이 맥이 끊겼던 산악회를 부활시키겠다며 끈질기게 가입을 권유했다. 아마 어마무시하게 잘생긴 실과 J 선배가 없었다면 끝까지 거절했을 것이다. 부원은 딸랑 여섯 명. 가진 게 힘밖에 없는 성재 선배와 간헐적 꼬라지를 지닌 창근 선배가 회장과 부회장을 맡았고, 나와 복순이, 형진이가 합류했다. J 선배를 뺀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우리 사회과였다. 첫 번째 활동은 지리산 산행. 식목일을 끼워 토, 일, 월요일 2박 3일 일정이었다.
산행은 최악이었다. 부원들끼리 끈끈하지도 않았고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하루종일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걷기만 했다. 선배들은 원래 재미없는 데다 숫기도 없었고, 우리도 준비하면서부터 책임감이 없는 그들에게 불만이 쌓여 있었다. 동아리 서열을 잡는다며 매가리라곤 없는 형진이에게 짐을 다 맡기고 선배들은 개인 가방만 메고 갔다. 형진이는 산처럼 높은 배낭을 짊어지고 고행하듯 걸었다. 끼니마다 코펠에 하는 밥도 찌개도 다 우리 몫이었다. 아무리 선후배 기강이 중요하다지만 폼만 재면서 여자 후배들이 처음 하는 산행인데도 배려는 커녕 부려먹기만 하는 것이 영 속이 뒤틀렸다. 4월로 접어들었지만 텐트와 침낭 하나로 견디기엔 버거운 산 위의 밤추위도 한몫했다. 덜덜 떠느라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을 맞았다. 텐트 지퍼를 열었다. 이 불편한 산행에서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리산의 장엄한 설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눈이 내리면서 나뭇가지에 앉기도 전에 바람 부는 방향대로 얼어있는 풍경을 처음 보았고, 그 황홀한 광경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으니까.
산을 내려와 구례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산꼭대기와는 달리 아래쪽은 따스했지만 선배들의 행동이 이상했다. 헐. 광주까지 갈 버스표를 끊을 돈이 없단다. 정신이 싹 다 도망간 게 틀림없구나. 회비는 어디 있는데? 밑반찬이랑 쌀, 요리 재료 준비도 맡기고 짐도 안 지고 요리도 설거지도 안 한 주제에 돌아갈 표값 생각도 안 했다고? 내 저들을 선배라고 믿고 따라왔다니. 한바탕 퍼붓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표정으로만 욕을 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모두들 자포자기하고 바닥에 털썩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기도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하나님, 이 사태를 해결해 주세요.’ 눈을 떴다. 눈앞에 두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볐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가운데 서 있는 이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승주와 행지(행복한 거지) 선배가 맞다. 이거, 또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야? 비현실적이다. 여기 구례 터미널에서 이들, 그러니까 나랑 친한 사회과 선배들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승주 선배는 행지 선배가 지리산에서 오래 머물 거라 짐을 옮겨 주느라 같이 왔단다. “선배, 돈 있어?” 아싸! 많단다. 형진이는 그 짐을 받아 지고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가고(미안), 승주 선배는 우리와 함께 광주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산행에서 또 하나의 소득이 있긴 했다. 복순이와 잘생긴 J 선배가 연인이 되었단다. 도대체 언제? 나만 분개하고 있었던 거야? 기도발 있을 때 나도 남자친구나 하나 멋진 걸로 달라고 할걸.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할 거예요.’ 선영쌤은 우주쌤의 문자에 농담인 듯 아닌 듯 정답을 답글로 달았다. 슬쩍 미루었던 나와는 확실히 다르긴 하다. 뭘 해 달라고 기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 주님 뜻대로 하시라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진짜 급하면 되지도 않는 걸 졸라대기도 한다. 그렇게 떼를 써도 기적처럼 눈앞에 갖다 놓으실 때 ‘이래도 안 믿을래?’하고 말하는 듯하다. 거기 웃고 있는 구독자님, 모두 우연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진짜 기도하고 나서 영점 일초 만에 눈앞에서 딱 이루어졌다니까. 나 기도발 예술인 여자라고! 안 해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