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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PC 주의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

by 산비

들어가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나 공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도 사적인 자리에서 실수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발언'을 했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이 블라인드와 같은 SNS를 타고 퍼질 수 있습니다. 사내에 소문이 돌고, 자칫 먹잇감을 노리는 기자의 눈에 띄어 해당글이 기사화라도 되는 날엔 인사팀에게 연락을 받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었죠.

정치적 올바름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가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수십 년 동안 노력해 쌓아 온 커리어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걸까요? 또 이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정말 그 이름처럼 항상 올바른 걸까요?


이번 포스트에선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을 지향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현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사례를 통해 알아 다음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신중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치적 올바름 주의(Political Correctness, PC)란?

먼저 '주의'를 빼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이란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이 섞인 표현을 피하자는 신념입니다. 정의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 없는 좋은 방향성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하게 되죠.


이 신념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흥미롭게도 1970년대 미국 대학의 좌파 학생들이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산당에서 누군가 지침에 부합하지 않은 발언을 할 때 지적하는 표현인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는 표현을 가져와 "그 차별적인 발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소 동지"라고 흉내 내며 놀리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인종, 성별, 종교, 성 정체성, 장애와 같은 요소들로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정의(Justice) 다시 말해, 개인 간의 적절한 도리이자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로 정하려는 '사회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운동을 진행하는 쪽이 'PC 주의' (Political Correctness, PC) 입니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접었다 피면서 "Politically Correct~" 하면서 비꼬는 용도

현대에 와서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 맞물려 'PC 주의'라는 이념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찬반에 따라 양측의 이념은 ~ 주의와, 반 ~ 주의 형태로 구분됩니다. Politically Correct라는 표현 자체는 한국에 들어와 해석 과정의 문제로 오해의 여지가 많게 활용되고 있지만, 본토에선 주로 보수층이 진보나 소수자 관련 사상을 비판하면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대선 레이스에 반 PC 전략을 들고 나와 PC를 비꼬며 보수층을 공략했습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음에도 지금의 'PC 주의'가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급진 집단의 공격수단으로써 악용이 반복되었고, PC 주의자들에 의해 교조적으로 강요받는 상황 및 본질 자체가 변질되어 편견이나 차별로 해석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도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발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급진적인 발언만 쏟아내며 이에 반하는 모두를 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말이죠. 반대로 이러한 상황에 피로감을 느낀 계층의 지지를 얻은 극단 차별주의자들은 이것을 역으로 명분 삼아 휘두르며 자신들의 차별적인 발언을 정당화하는 것에 '반 PC 주의'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토록 혼란한 정국에 누구에게도 속지 않고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 먼저 PC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이제 어딜 봐도 원래의 취지는 찾아볼 수 없게 된 PC이지만, 외국에 나가 인종차별과 같은 행위를 경험하고 나면 정말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던 이 신념이 특정 집단의 악용으로 점점 외면당하는 상황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절대적으로 올바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의미를 고려했을 때 correct를 '적절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제가 이것을 단순히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옳고 그름 즉, 0과 1로 나눌 수 있는 과학적이거나 인류가 모두 합의를 마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PC 주의는 정말 많은 운동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 페미니즘, LGBTQ+(성소수자 및 이에 대해 갈등하는 사람들과 그 전반) 등 들어봤을 수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운동도 존재할 것입니다. 같은 주제 내에서도 그 운동을 진행하는 성격과 목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옳음'과 '그름'으로 단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사실 자신의 주장이 '올바름'이라고 말하는 측이야 말로 PC 주의를 변질시킨 주범이자 급진 사상을 강제하기 위해 교조적이고 억압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하는 '우리의 제1순위 경계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Q. 한번 다음 질문들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O, X로 정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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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흑인의 강력범죄율이 높다고 해서 경찰관이 흑인만 집중적으로 검문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3.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것은 백인에 비해 평균 가구당 순자산이 10%에 불과해 범죄에 유혹되기 쉬운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은 과거의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정책에 있으므로 인종간 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1인당 최대 16억 원의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몇 번 질문까지 O로 생각하셨나요?


3번 질문은 실제로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주지사의 지시로 TF가 꾸려져 3년간의 논의 끝에 2023년 올해 5월에 내놓은 권고안입니다. 노예의 후손에게 최대 120만 달러의 현금 보상을 지급하라는 것이죠. 개인당 한화로 16억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해당 배상안을 두고 설문을 진행한 결과 백인의 80%는 반대, 흑인의 77%는 찬성으로 응답했습니다.

만약 어떤 PC 주의 운동가들이 찾아와 3번에 X라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모두 흑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이거나 이에 관심 갖지 않는 인종차별 주의자야! 당신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인종간 부의 격차가 영속화되었어. 앞으로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흑인의 범죄는 당신이 공범인 것과 다름없어! 이 더러운 쓰레기 같은 흑인차별자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냥 수긍하실 건가요?


이들이 PC 주의 운동가이고 '올바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름'에 동의하지 않은 나는 '틀렸다'라는 논리 구조는 느끼셨겠지만 터무니없습니다. 3번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백인의 80%와 흑인의 23%가 흑인을 인종차별하는 차별주의자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말이 되지 않죠. 그러나 1번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차별주의자로 봐도 무리가 없으며 2번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입장을 듣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PC를 악용하려는 급진주의자들은 주로 이런 인지적인 틈을 이용합니다. "인종차별은 당연히 나쁜 게 아닌가? 하지 않는 게 맞지"라는 1번 질문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중을 이용해 3번에 X를 표시한 사람을 1번에 X를 표시한 사람인 것처럼 처벌하고 사회적으로 지탄해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죠.



PC가 한국어로 시작된 개념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뉴스로 접해도 말하는 게 매번 달라 혼란이 가중되고 이해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 포스트에선 PC를 굳이 번역하려고 하지 않고 중심 개념과 이를 지지하는 측, 반대하는 측으로 나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리하면 해당하는 주제들에 대하여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나 언어를 피하라는 것'PC(Politically Correct)'입니다. 이를 지지하며 이러한 행태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측'PC 주의(Political Correctness)'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반 PC 주의(Anti-Political Correctness)'란 위 예시처럼 동의할 수 없는 특정 사상이나 운동을 비판하거나, 아예 어떤 언급도 못할 정도로 과한 통제를 비판하는 측입니다. 물론, 같은 측에 속한다고 해도 동일한 사항을 모두 함께 지지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사항을 지지하는 그룹 내에도 그 정도나 급진성에 차이가 크게 나타납니다.


각각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여 스스로 'PC'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불순한 목적을 가진 집단들이 인지적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용어의 혼용을 통해 오해를 일으켜 나를 조종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립은 허락하지 않습니다만?"

그럼 PC가 최근에 생긴 개념이 아닌데 왜 요즘에 이렇게 이슈가 되고 PC 주의에 분노하거나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증가한 걸까요? 반 PC 주의가 미 대선의 주요 승리 전략이 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요.


먼저 기업을 중심에 두고 PC주의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례들을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쟁지역이 된 PC주의와 지뢰밭을 걷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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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즈니

한국에는 인어공주의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백인에서 > 영화는 흑인으로 캐스팅된 이슈로 디즈니의 PC 주의가 처음으로 크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었습니다만, 사실 디즈니는 그전부터 대쪽같이 PC 주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미국의 보수진영 유력 대선후보와도 LGBT 이슈로 날을 세워 싸우며 디즈니월드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PC 주의 행적으론 마블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에 페미니즘, 동성애, 반기독교 관련 장면을 넣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장면을 넣는 것은 창작자의 자유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만... 장면에 대한 관람객들의 공통적인 리뷰에서 디즈니의 PC 주의가 지적받는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영화 스토리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개연성 없는 장면을 억지로 집어넣어 몰입을 깬다." 스토리와 잘 어우러진 부분들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 "PC 주의를 가르쳐야겠으니 장면을 넣어라"와 같은 방식으로 결정된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의 몰입을 깨고 교조적으로 PC주의를 가르치려 듬으로써 이걸 느낀 순간 불쾌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한, 많이 지적받는 부분이 창의력을 PC 주의로 대체하려는 것처럼 모든 작품에 빠짐없이 PC 주의를 넣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PC 주의가 없는 작품은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디즈니의 행적은 폭주기관차처럼 이어져오고 있는데, 초점을 사업이 아닌 PC 주의에 맞춘 결과 코로나 이후 주가는 9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고 디샌티스 주지사와의 격돌이 심화되어 디즈니 월드 사업모델마저 불확실성이 커질 기미가 보이자 참다못한 직원들이 나서 중립을 지켜줄 것을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 입장에서도, 디즈니 주식을 보유한 주주 입장에서도 정신이 아득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소비자에게 외면받다 못해 직원마저 말려야 하는 지경이라니...


2. 게임업계

대중이 PC 주의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영역이 게임업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반되는 사례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먼저 락스타 게임즈의 서부 무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경우 PC 주의를 게임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 고증을 중요시한 게임답게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여성참정권 운동을 진행하는 페미니즘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또한, 메인 스토리 상에서 갱단에게 가족을 잃고 직접 복수를 위해 나선 뒤 이러한 불행이 다른 이들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 다짐하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여성 등장인물도 존재합니다. 게이머들은 이러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잘 녹아든 캐릭터들에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반발이나 논란 없이 누적 7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반대로 PC 주의로 소비자들의 큰 반발을 산 경우도 존재합니다. 바로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2"입니다. 라오어 2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소녀 '엘리'와 아저씨 '조엘'이 좀비로 가득한 미래 도시에서 역경에 맞서 싸우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게임의 후속작입니다. 첫 작품이 워낙 큰 인기를 얻었던 만큼 2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매우 컸는데 출시 3일도 되지 않아 그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락스타와 반대이고 디즈니와 유사하다고 말씀드리면 그 이유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의 주인공 '조엘' 대신 '애비'라는 여성 캐릭터를 새로 집어넣고 소녀 '엘리'에게 갑자기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집어넣더니 플레이 도중 유저들은 스토리 전개와 무관하게 '엘리'의 동성애 장면을 시청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성 소수자의 상징물인 무지개 표식을 좀비로 멸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세상에 이곳저곳에 넣어놔 몰입을 깬 것은 보너스였습니다. 눈에 익은 패턴이죠... 팬들의 기대로 게임 출시 3일 만에 400만 장이 팔렸으나 실적은 거기까지였고, 환불 요청이 이어지고 평점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수천억 규모의 투자가 들어가는 AAA급 게임의 투자 비용이라도 건지기 위해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정가 44,800원의 게임을 1만 원에 풀었음에도 판매 실적은 저조했고 판매량 1천만 장 돌파라는 뉴스에도 '판매량이 아니라 출하량 아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이후 이례적으로 실적 집계나 발표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3. 버드와이저

23년 5월 버드와이저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23% 감소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맥주와 같은 소비재는 브랜드 별로 소비층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특정 브랜드만 매출이 급변하는 현상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사례를 통해 현시대에 마케팅 팀이 자사의 고객층과 PC에 대해 무지한 경우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버드와이저의 마케팅팀은 4월 아역배우 출신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에게 자사의 인기 제품인 버드 라이트에 정성껏 멀바니의 얼굴을 넣어 특별 제작한 제품을 선물합니다. 감동한 멀바니는 SNS에 버드와이저로부터 받은 선물을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영향으로 매출은 급감해 버드와이저는 20년 동안 유지해 오던 시장 점유율 1위를 내주게 됩니다. 처음 선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왜 매출이 떨어졌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마케팅 팀의 자질이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으로 변하게 됩니다.


광고는 손님을 더 모으려고 하는 것이지 있는 손님을 내쫗으려고 하는 게 당연히 아닙니다. 비즈니스 관련 도메인에서 자주 쓰이고 오바마 대선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 주목을 받았던 '업리프트 모델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념은 복잡하지만 목적은 간단하게 '광고 노출 시 예상되는 반응 타입에 따라 접근 대상을 분류해서 한정적인 자원을 전략적으로 쓰자!' 라는 기법입니다. 그 이유는 동일한 하나의 광고라도 고객층 별로 모두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광고가 1번그룹에는 긍적적이지만 4번 그룹에는 부정적이고 / 1번 그룹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50인 반면 4번 그룹에서 나올 손실이 -5,000 이라면 광고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버드와이저의 충성 고객층의 정치 성향이 보수층인 경우가 대다수였고 그들은 진심으로 PC 주의를 싫어하며, 이 성향을 이미 트럼프의 대선 레이스 때부터 명확하게 밖으로 보여줘 왔음에도 마케팅 팀이 이 모델링 까지 갈 필요도 없는 명확한 시그널을 무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SNS에 게시물이 업로드된 직후 바로 거센 반발과 불매가 시작되었고, 한 달 만에 전체 시장 점유율은 10.3% 포인트에서 무려 3% 포인트나 떨어져 고객의 30%가량이 증발한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경쟁사들은 그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얻어 점유율을 올렸습니다. CEO는 자사의 고객층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마케팅 팀의 고위직원 2명을 휴직처리했으나... 이번에는 진보 층에서 PC 주의를 무시한다며 들고일어났습니다. 다시 브렌든 위트워스 CEO는 눈물을 머금 맥주로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냉담한 반응을 확인하고 결국 PC 세상엔 중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단을 내립니다.


그 결정은 바로 마케팅팀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고, 주 고객층인 '반 PC 주의' 보수 진영의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내 18,000명 인력 중 2%를 구조조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발표했고 감원 대상이 마케팅 등 사무직원 대상으로 한정됨을 밝혔습니다. 360명가량의 미국 내 마케팅 직원을 모조리 자르며 향후 양조에만 집중할 뜻을 드러냈습니다.



위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PC 주의를 강제하고 교조적으로 접근하면 소비자의 반발과 외면을 받는다는 것, 적용 방법에 따라 PC 주의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소비자 층을 확대하고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 확대를 노리려다 기존 고객층의 PC 성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면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PC 주의에 피로를 느끼고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은 놀랍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 이유는 PC 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거대한 만큼 기업들의 다양한 접근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경험보다 사례와 같은 부정적인 경험이 더 많을 뿐더러, 뇌는 부정적 경험을 더 오래, 더 강하게 기억하는 '부정성 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차별 주의자입니다. 모두 공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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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PC 주의가 개인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며 왜 PC 주의가 부정적인 시선을 받게 되었는지 국내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강자에게 짓밟힌 약자가 '폭로'를 통해 강자가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하는 미투 운동,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정보 공유 채널 SNS. 두 가지의 조합은 마침내 약자에게도 정당한 권리와 존중받을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개인의 '말'이 프레임 하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알게 된 사람은 억울한 약자만이 아니었다는 게 모든 끔찍한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도래했습니다! 말 꼬투리 하나만 잡히면 그 사람이 무엇을 했든 어떻게 살아왔든 상관없이 매도하고 왜곡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는 '끔찍한 시대'가. 그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다수의 인터넷 PC 커뮤니티는 집단 극화현상으로 이성적인 사고보다 감성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을 위주로 돌아가며 PC 주의대 혐오의 시대라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을 융합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집단 극화 현상'은 어떤 문제에 있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보다 집단에 속해 의견을 나누게 되었을 때 그 의견이 훨씬 더 극단에 치우치게 되는 사회심리학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주장은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같은 주장은 논리적이라고 생각해 기존 입장을 계속 강화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이와 유사한 개념인 '확증 편향'도 인간이 기존의 견해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보를 수용하려는 경향을 설명하는 인지 과학이론입니다. 사실 이런 인지적 편향은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극화와 차이점은 무작정 자신의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경향성을 보일 순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 다른 정보나 연구를 접하고 나면 스스로를 점검하며 새롭게 배워 나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가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에게 과학자가 다가가 "사실 기압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상에선 경험하기 어렵지만 말이죠. 여기 제가 실험을 통해 증명한 내용이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죠!"라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정상적인 사람은 이를 확인하고 기존의 믿음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단 극화한 커뮤니티는 이런 과정을 일체 거부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의견에 동의해 줄 사람과 내 의견을 강화할 증거뿐이기 때문이죠. 그 외의 모든 것은 멍청함과 거짓으로 취급해 거부합니다. [넛지]의 저자로 유명한 선스타인 이러한 현상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그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나 정보를 접하더라도 기존 신념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PC 주의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위에서 잠깐 언급한 'PC 주의 공격수단으로써의 효과성이 입증'이라는 부분을 기억하시나요? 질투, 이기심, 혐오, 분노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해서 집단 극화한 커뮤니티를 '눈먼 칼'로 휘둘러 처음엔 연예인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PC 주의를 곁들여 효과성이 입증된 공식을 활용해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를 직장 동료나 학교 친구도 온라인에서 선동과 날조를 통해 표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 3가지만 하면 표적지가 완성되거든요.

1. 강자와 약자 같은 프레임

2.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이 보장된 SNS

3. 집단 극화한 커뮤니티


SNS의 익명성에 숨어 사건에 프레임을 씌웁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대상을 차별주의자이자 악마적인 대상으로 묘사합니다. 그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채로 글을 올려 SNS상의 반응을 얻고, 극단주의자가 가득한 커뮤니티에 캡처해서 올리면 할 일은 모두 끝납니다.


이제 상대방은 소명의 기회도 증명의 시간도 없이 스스로를 사회 정의 수호자로 여기는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증명 절차가 생략된 사적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들은 온갖 정신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주고 심한 경우 사회적인 죽음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하지도 않은 일로 직장을 잃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가족을 잃기도,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연예인 사례로는 2010년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타진요'가 존재합니다. 집단 극화를 통해 졸업증명서를 보여줘도 믿지 않고, 당사자인 스탠퍼드 대학이 직접 나서 결론을 내려도 이를 부정하며,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테러를 감행하여 결국 타블로의 부친이 스트레스로 인한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상황까지 유발하였습니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고 기사에까지 테러를 저지르며 다단계라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이후 PC 주의를 활용하기 시작한 일반인 사례로는 여성, 아동 관련 극단주의를 공격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맘카페에 거짓으로 "채선당 직원이 임신 6개월 차인 내 배를 걷어찼다."며 글을 올려 음식점 불매 운동을 일으킨 케이스, 유사하게 맘카페 김포 어린이집 교사 자살사건, 광주 맘카페 학원 차량 난폭운전 사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케이스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시발점이 사실과 거리가 먼 날조라는 것, 진실이 밝혀지거나 증거를 제시해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과정에서 피해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결코 그 피해를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PC 주의가 '소수'에서 벗어난 미국은 아예 상황이 미쳤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소수가 아닌 그들은 프레임을 씌우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도 않고, 익명성도 거부합니다. 여성이 남성을, 유색인종이 백인을 비난하고 괴롭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이런 행동을 SNS에 올려 유명세를 얻습니다. 미디어가 이에 동조하며 반 PC 성향의 발언은 모조리 캔슬하며, PC 주의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를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국의 컨텐츠도 아닌 오징어 게임에 게이,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없다며 비난하고 모든 작품에 LGBTQ를 넣게 강제하려 합니다. '화이트 워싱'을 하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떠나자 PC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을 차지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PC 주의자들은 평등, 배려, 인권을 강조하며 소수자를 신경 쓰고 약자를 존중하라고 합니다. 차별하지 말고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단체로 몰려가 약자를 린치하고 아니라는 말은 듣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의 인권은 무시한 채 테러를 가해 결국 잔인하게 생명을 꺼트립니다. 이런 일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어도 그들의 이중 잣대는 강철 같이 확고하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내용이나 논리와 상관없이 '반 PC 주의'로 규정하고 적대합니다.


PC라는 주제에 대해서 어느 편도 아닌 일반인이라도 이러한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상황을 반복적으로 지켜보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쌓여가는 PC 주의에 대한 피로는 중도층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PC 주의에 돌아선 '샤이 반 PC 주의'로 만듭니다. 실제로 현 미국 정치권에선 '반 PC 전략'이 PC 주의가 아닌 모든 이들을 결집시키는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PC가 사회에 미친 영향과 앞으로 미칠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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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까지의 포스트를 정독하신 분이라면 많은 고민과 PC라는 주제에 다소 피로감을 느끼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환기해 보고자 아래 내용은 흥미롭게 일종의 시간여행처럼 구성해 봤습니다.


과거의 기사, 최근 칼럼, 구글의 사건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PC와 여러 운동들을 겪은 미국을 보고 PC가 사회에 미친 영향, 무엇을 주의하라고 하는지, 결국 어떻게 됐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006년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Rethinking Political Correctness" 요약입니다.


PC의 약속 하에 이루어진 규범의 변화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PC가 건설적이고 참여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장벽이 될 수 있다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우려한다. 사람들은 PC로 규제받는 세상에서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도 말을 꺼내지 않고 속으로 결론을 내린다. 묻지 않기에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하지 않기에 그 결론은 불변한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선 분노가 쌓이고, 관계가 무너지고, 성과가 저해된다.


우리는 PC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규칙으로 강요하는 경우 관계를 개발하려는 직원을 방해할 수 있고, 시정 조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예를 들어 남성과 백인)은 자신도 모르게 PC 규칙을 어길까 두려워 달걀 껍질 위를 걷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최악의 경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다수'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다수'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으면 '소수'는 공정성에 대한 우려 및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논의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역학은 오해, 갈등, 불신을 낳고 관리 및 팀 효율성을 모두 약화시킬 것이다.


리더는 조직원들이 PC에 건설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의도적인 괴롭힘이나 차별로부터 즉시 직원을 보호하고 무관용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그 대응 과정에서 논의나 탐구를 통해 관점을 공유하고 다른 직원들의 두려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2020년미디엄에 쓰인 칼럼 "Tales from NYC Tech: Has PC culture gone mad?" - 유럽 출신의 여성이 뉴욕의 테크 기업 3곳에서 근무한 뒤 작성한 칼럼입니다.


나는 이제 직장 내 PC 문화가 득 보다 실이 더 크다고 믿는다.

특정 질문과 주제에 접근이 금지된 반면, 극단적이고 좌파적인 정치적 견해가 회사 리더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조장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항상 공격적이지 않고 자신의 '선함'을 보여주는데 집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이러한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말하는 내용이 행동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문제는 진정한 진실성보다 표면적인 겉모습을 훨씬 중시해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가 번성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PC는 직원에 대한 높은 통제권을 리더에게 부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지금은 화합의 지점을 넘어 이 신념체계가 너무 극단적으로 직원 간의 상호작용을 통제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차단한다. PC가 직장의 모든 측면에 무언의 규칙으로 스며들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된다. 규칙을 어기면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거나 때로는 해고될 수도 있다. 다음 4가지 규칙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1. 절-대 차이에 대해 언급하지 마세요.

차이에 대한 모든 언급은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이 출신 국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경우를 대비해 유럽 억양조차 언급할 수 없도록 하는 게 그게 정말 예의 바른 것인가? 아니면 PC가 미친 것인가? 동료들은 어떻게 서로에 대해 배우고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2. 남자와 여자는 전쟁 중이다.

이젠 남성과 여성 사이에 그 어떤 섹슈얼리티가 포함된 대화도 존재해선 안된다. PC는 여성을 편집증적으로 만들었고 남성은 어떤 말실수라도 할까 두렵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전통적인 섹슈얼리티는 금기시하는 반면, LGBTQ 섹슈얼리티는 찬양하고, 장려하며, 전사 차원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왜 이런 양상이 생겼는지는 이해하지만 이건 over-correction이라고 생각한다.

3. 만약 정치적으로 온건파이거나... 우파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보수이거나 정치에 분석적인 접근을 통해 화합을 추구하는 온건한 사고방식은 PC 주의자들의 적대감을 살 수 있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분노한다.

4.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직원 모두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운영되는 테크 기업에서 고액 보수를 받으며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선택했다. 그럼에도... 피닉스 호아킨의 반자본주의 연설을 직장에서 장려하며 목표로 삼으라고 권한다. 이는 기이하지만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회사의 PC 주의 관점과 잘 맞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제 행동보다는 미덕을 쫗는 말이 중요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PC 주의는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며 개인을 음소거한다. 이러한 이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가며 지지를 얻고 있다. PC 주의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조금 돌려 3년 전인 2017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구글은 2017년 7월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구글의 PC 정책에 대해 작성해 돌린 메모가 성차별 논란에 휩싸이자 그를 하루 만에 해고하고,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다모어, 하버드 석사 출신의 프로그래머이자 생물학자로 작성한 글의 제목은 "Google’s Ideological Echo Chamber"입니다. 이번 이슈에서 제임스 다모어의 주장이 맞았냐 틀렸냐를 떠나서 구글 수뇌부는 PC주의에 입각해 그에게 '악당'이란 낙인을 찍기에 급급했고 이러한 대응은 내부 직원의 공감을 사는 것에도 실패했으며, PC 주의가 아닌 모든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는 사내에서 토론 금지라는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끔찍한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논란의 시작점은 미 노동부 조사 결과 '구글이 통상적으로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지급한다.'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구글은 또 해결 방법으로 인종 비율 할당과 같은 역차별 정책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다모어는 기업이 어떤 쪽으로든 편향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성차별이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차별을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으로 메모가 시작합니다. 그러나 솔직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정책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PC 주의의 성역 없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며 메모를 사내에 공유합니다.


글에서 '성별의 모든 격차가 억압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관점은 극단적'이며 이러한 '억압을 수정하기 위해 역차별을 가한다는 방식은 권위주의적'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구글은 압도적 다수가 좌파 성향으로 편견을 만들어 반대자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영향력을 유지하는 'PC 주의 단일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지적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물학적 차이: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사회적 영향과는 독립적인 특성이다.

2. 성격 차이: 여성은 감성과 미학에 개방적이고 인간에 대한 강한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존재해 사회 및 예술 분야 직업 선호도가 높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프론트엔드(UX, UI)를 다루는 부분에 상대적으로 더 많다. 반면에 개인별로는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급여 협상 등의 요구 시 남성 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다.

3. 지위: 높은 지위에 여성이 없는 이유만 볼게 아니라 왜 남성이 많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위는 남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이를 얻기 위해 남성은 균형 잡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원한다면 하지 않을, 시간과 스트레스를 매우 많이 요구하는 고위직에 도전하려는 성향이 존재한다. 높은 지위에 도전하게 만드는 이 성향이 위험한 직업을 갖도록 이끄는데도 동일하게 작용해 업무 관련 사망의 93%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4. 역차별이 아닌 사람 중심의 비차별적 해결책 제안: 기술 포지션이나 지위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하고, 심리적 안정감과 사람 중심적 SWE 환경을 만드는 방식을 제안한다.

5. PC 주의 비판: PC 주의가 도덕적 우위를 점하지는 것을 막아라. 편익을 무시하고 PC 주의에 따르지 않는 악당을 처벌해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방식은 잘못되었다. 보수주의자를 소외시키지 말아라. 그들도 그들만의 장점이 있다. 할당제를 멈춰라. 성별이나 인종으로 할당하는 방식은 불공평하고 분열을 야기한다. 공감을 덜 강조해라. 정서적 공감에만 의존하면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편견을 품을 수 있다. 의도를 우선시하라. 모든 미세한 의도치 않은 실수까지 통제하려고 하면 자기 검열을 증가시켜 민감성을 증가시키고 긍정적이지 않다. 과학과 인간 본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라.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편견에 대응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한 그는 차별주의자 혹은 급진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지속적으로 소통의 뜻을 밝히며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결말은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논란이 되자 하루 만에 해고통보였습니다. 블라인드에선 이 해고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다른 직원들의 의사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화면 캡처 2023-09-27 235320.png 블라인드 제임스 다모어 해고 찬반 조사

10개 회사 중 구글을 포함한 7개의 회사에서 과반이 '해고에 반대한다'에 투표했으며, 애플과 링크드인은 절반에 가깝습니다. 그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개인이 이러한 의견을 가졌고, 표현했다는 것 만으로 해고까지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로 'No'에 투표한 이유였습니다.


이 다모어에 메모에 대해 유튜브의 수잔 보이치키 CEO는 한 인터뷰에서 '여성'을 '흑인'으로 바꿔도 사람들의 태도가 동일했을지 질문을 던지면서 '아이에게 대답했다', '가능성을 믿는다', '슬픔을 공유한다'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회사가 여성 차별 발언에 대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아니다'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미덕을 쫗는 말이 중요하다. 왠지 익숙하네요.


개인적으로 운동을 즐겨하고 몇몇 종목을 즐겨 보는 입장에서 인종에 따른 근육의 질의 차이와 퍼포먼스의 차이가 존재하느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차가 존재할뿐더러 피지컬이 단일 변수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인종이라고 프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닫혀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지컬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큰 NBA, NFL과 같은 경우일수록 아시아인을 찾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죠. 과학적 근거가 있고 아시아인으로서 이걸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할당제는 더더욱 바라지도 않죠.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남녀 성별을 나눠 운영하는 모든 스포츠야 말로 차별의 온상이 아닐까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터무니없이 키워드만 흑인으로 바꾸면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그 근거가 전혀 맞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상대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논리적인 전개를 해 나갔으면, 반박을 할 때도 과학적 근거를 갖춰 논리적으로 대응하며 토의를 진행하는 것이 지성인으로서 합당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첫 입장을 절대적으로 고수하겠다는 것도, 대안 제시가 없는 비판만 수행하는 것도 아님에도 감성적인 반응만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강요하며 그저 '악당의 낙인'을 찍는 방식 하에선 그 어떤 건설적인 토의도 진행될 수 없습니다.


극도의 모순이 느껴지는 것이, 과학 기술로 쌓아 올린 문명에서 그 최첨단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IT기업의 헤드들이 과학 기술의 근간이 되는 이성적인 접근과 건설적 토의를 회사에서 제거하고 그 자리를 PC 주의와 공감을 강요하는 것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2006년에 이미 정해져 있었을 수도?


'지금까지 PC가 사회에 미친 영향과 앞으로 미칠 영향'이라는 소제목으로 시간 여행을 잠깐 진행해 봤습니다. 마지막 여행지인 2017년 메모에서 다모어는 극단적이고 권위적인 접근은 옳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소통을 하자고 합니다. 또한, 반대하는 사람이 말만 꺼내면 PC 주의로 손익을 무시하고 도덕적 우위를 점해 악당을 처벌하고 침묵을 불러오는 방식을 멈추라고 말하죠. 공감을 덜 강조하고, 의도를 중요시하며, 과학과 인간 본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도 권합니다. 이 부분을 보고 유튜브 CEO의 답변을 한번 다시 읽어보시죠. 빠짐없이 모두 걸립니다.


사건 직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라고 말하던 구글은 정치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주제는 사내에서 토론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음... 이제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와 별개로 'PC 주의'와 관련한 페미니즘, LGBTQ 등의 교육, 행사등 서포팅은 지금까지도 적극적으로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3년 후 2020년으로 가볼까요? 뉴욕의 테크기업에서 근무하며 습득했다는 규칙을 다시 읽어보면 이는 침묵하는 방법입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 계속해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PC 주의'가 아닌 모든 사람은 침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환경이 미국에 형성되었습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2006년의 하버드 비즈니스 칼럼을 보면, 리더에게 논의와 탐구를 권하며 최악의 경우 PC 주의 규칙을 어길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선 분노가 쌓이고, 관계가 무너지고, 성과가 저해되는 결과가 올 수 있다면서 말이죠.


2006년에 경고한 PC 주의 도입 이후 소통의 부재가 불러올 최악의 케이스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고, 2017년 구글은 소통 자체를 금지하며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지워버렸으며, 2020년 뉴욕에 온 유럽인은 여기가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나라인 미국이 맞냐며 "미쳐버린 PC 주의"라는 침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칼럼을 작성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아직 미국의 지경은 아닌 것에 안도할지, 최악의 경우를 피할 방법은 없는 건지 고민이 되실 것 같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PC 주의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안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래 3단계로 접근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1- 극단 PC 주의 행동 양식은 정형적이다.

논리적 토론의 개입 배제, 악당 낙인, 감성적인 접근

극단적인 PC 주의는 자격과 논리 없이 남을 비난하는 것 만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는 사회적 위치가 낮은 개인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반대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겐 PC주의의 억압과 통제 특성이 매우 편리한 조직 운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2- 해결 방법도 정해져 있다.

성역 없이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방법의 유효기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소수가 다수가 되기 전까지입니다. 극단 PC 주의자로서 얻을 수 있는 통제의 권력은 동조자가 늘어날수록 강력해지고 돈이 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돈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면 유입 속도가 빨라져 영향력이 급증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뉴 미디어에서 시작해 레거시 미디어까지 장악하고, 기존의 차별을 고쳐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할당제와 같은 역차별제도를 도입시켜 자격 없이 사회 곳곳에 침입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PC 주의가 소수에서 다수가 되면 그들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노력 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과실을 빼앗으려 해 사회 전반의 효율성과 성과를 저해하고 갈등을 키웁니다.


3- 판단 기준 수립.

누군가 PC에 위반된다며 '차별'이라고 주장할 때 사용할 체크리스트

약자가 선이고 강자가 악이 맞는지

개인적 판단을 존중할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인지

공격의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대가가 공정한지, 특정 계층에만 강요되는 사항이 아닌지

누군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협을 통해 침묵하도록 만들어 논의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있지 않은지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트위터 인수 당시 일론 머스크가 스스로를 "moderate"라고 표현하며, 자신은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PC 주의가 좌측을 너무 극단으로 만들어 자신이 어느새 보수가 되었다는 언급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어쩌면 개인적으로 온건이나 진보라 생각했던 스스로의 성향이 어라..? 싶을 정도로 미국의 극단 PC 주의가 이끄는 진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의 콘텐츠까지 수정하려 드는 것을 보며 미디어가 잡아먹힌 이후 "cancel culture"의 광기가 체감되기도 했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 이 포스트가 PC 주의를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기반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독자분들 모두 혼란스러운 PC 주의의 시대를 현명하게 잘 헤쳐 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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