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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n 28. 2024

엄마가 아플 때

급체

 어제 출장 갔다가 갑자기 체기와 두통이 심해져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고맙게도 남편이 데리러 와 주어서 함께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집으로 바로 와서 잠이 들었다. 한 번씩 이렇게 심하게 두통이 오면 견딜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씨름해도 소용이 없다. 병원 가서 주사를 맞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또 시작이다. 


 최근에 스트레스가 있긴 했다. 맡은 업무도 부담이 되고, 애들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남편이 속 시끄럽게도 하고. 이래저래 괴로운 마음에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났었다. 그게 쌓여 있었는지, 멀쩡히 잘 먹던 아침을 먹고 탈이 나 버린 것이다. 음식만 적체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도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쌓여서 몸까지 괴롭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누가 그랬었다.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야 하는데, 또 실패다. 어쩌겠나.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며 사는 거지. 불완전한 사람인 걸 인정해야만 한다. 직장 동료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할 때 자리를 빨리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안 그래도 비실거리는 체력에 아픈 모습까지 보이면 너무 한심해 보일 것 같아서다. 아픈 바람에 회식도 못 갔다.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었는데, 속상하다. 


 아픔에 몸부림치다가 기운이 다 빠져서 자고 일어났더니 밤이었다. 밤 10시. 거실에 나가 봤더니, 아들내미가 또 컴퓨터 앞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 


"아들, 엄마 아픈 데 왜 안 들여다 봐줬어? 엄마 서운한데~."

"아, 엄마 아픈 거 들었는데, 자고 있어서 안 깨웠지. 서운해?"

"아니야, 장난이야~헤헤"


큰 딸 방에도 가 보았다. 

"큰 딸, 엄마 아픈 데 왜 안 들여다 봐줬어?"

"아팠어? 몰랐네, 괜찮아? 나도 지금 너무 힘들어서.. 오늘 시험공부를 너무 안 했어.. "

"아이고, 그랬구나. 어떡해.."


작은 딸 방에도 가 보았다.

"00아, 엄마 아픈 데 왜 안 와 봤어?"

"응, 자고 있다고 해서 그냥 왔지.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히히 장난이야~"


 아이들마다 찾아다니면서 나 아팠다는 얘기를 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픔도 사라지고, 이렇게 어리광 부리면 받아주는 아이들도 있고. 아 행복하다. 


 힘들어하는 큰 딸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계란도 넣어주었다. 사랑을 담아서. 맛있게 먹고 있는 누나를 보더니 아들내미도 왔다. 아까 물어볼 때는 안 먹겠다더니, 지금은 먹고 싶단다. 알아서 끓여 먹겠단다. 다 컸네, 다 컸어. 


 회식을 못 가서 아쉬웠지만, 남편의 챙김도 받고, 아이들과 사랑도 주고받고 아주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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