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에 대한 생각
슬로리딩 관련 책을 읽었다. 하시모토 선생의 <은수저> 수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시모토 선생은 수업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연구노트를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교재로 나누어주었다는 사실이다.
교사가 먼저 수업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직접 은수저를 읽고, 읽은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 할 단어와 문장, 그리고 샛길로 빠지는 아이디어들을 직접 생각하고 그것을 노트에 반영했다. 수업을 먼저 체험한 것이다.
처음에 슬로리딩 수업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랬다.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읽다 보면, 샛길로 빠지고 싶은 흥미로운 부분이 보이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더 깊이 들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업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짜 두고 학생들을 어느 정도 유도해 가려면, 계획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야 한다. 물론 그 계획대로 모두 진행한다는 뜻은 아니다. 철저히 짜 놓고, 융통성 있게 변화해 나가면 될 것이다.
하시모토 선생의 준비성에 놀랐고, 수업에 대한 열정에 놀랐다. 교사가 준비된 만큼 학생들은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문법 수업을 하며 지난 시간에 잘못 가르친 부분에 대해 이번 시간에 수정해야 할 것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참 부끄러운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시모토 선생이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연구 노트라는 것에는 잘 모르는 단어, 인상 깊은 문장, 그에 대한 감상들을 적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돌아와 수업을 하며 나도 모르게 수업 내용 중에서 재미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파고드는 재미가. '금린어'라는 단어에서 '쏘가리'를 찾아내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그래서 그 물고기에는 실제로 쏘는 독이 있었는지 찾아내는 샛길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 샛길로 빠지는 것이 재미다. 중요한 부분만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샛길로 빠져서 깊이 들어가 보면 새롭고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오메 신기한 거.
중양절이 나오면 중양절 말고 또 다른 절기에 무엇이 있는지 그때마다 하는 행사는 무엇인지, 찾아본다. 교사도 학생도 파고들며 찾아지는 정보가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 왜냐하면 꼭 해야만 하는 내용이 아니니까. 그래서 은수저 수업은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을 선사했으니까 말이다.
시험에 나올 리가 없는 정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탐색할 수 있다. 물론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쓸모없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경험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누가 억지로 시키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탐색하고, 스스로 탐구 깊이를 정해서 파고드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 그 과정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 그러려면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전략도 필요하고 교사에 대한 신뢰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수업 시간의 여백도 필요하다. 욕심은 나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평가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다움의 정수는 처참한 분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지는 그저 그런 아름다움은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누군가 감동했다면, 어느 누군가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