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누리 Jun 13. 2024

딱 한 장만 넘겨 볼까

“무슨 일 하세요?”

“육아카페에서 일해요”

“아~ ”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경기도 지역의 한 맘카페에서 일한다. 주위에서 별로 볼 수 없는 신기한(?) 직종이다. 게다가 맘카페라는 말을 들으면 “맘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일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을 말해주면 질문을 했던 그 뒷말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거 같다. 아마도 나에게 아!! “맘충소굴!”이라고 말을 할 순 없을 테니깐! 나는 가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도 한다. 그들이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 나에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기분나빠하지는 않을텐데..라고 생각하며말이다.


그 다음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수입이다. 그 역시 맘충 다음으로 쉽게 떠오르는 ‘단어=갑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돈을 잘 버나? 하며 궁금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매월 정해진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내가 맘카페 운영자로 일하며 할 수가 있는 갑질은 없고 월급은 5년 전에 퇴사한 직장의 절반 정도이다. 가끔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돈을 잘 벌거라 생각했다고.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월급쟁이고 매일매일 일과 삶의 경계가 없는 생활을 한다. 운영자로 활동하며 꽤 많은 부분 나의 생활을 공유하며 커뮤니티 속에 살고 있다.


내가 한 말과 행동 때문에 나에게 월급을 주는 내 직장에 누를 끼칠까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넘길 때도 많다. 누굴 만나고 이야기를 해도 폰을 늘 들고 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핸드폰을 늘 쳐다본다. 그래서 가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을 때, 기쁘기도 하다. 그 시간만큼 나의 삶에 온전히 집중에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고속충전기가 너무나 잘 나와 충전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젠장 벌써 폰이 켜지네…’      


아무튼 이런 생활을 하며 왜 맘카페에서의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음악 점역사라는 우리나라에 몇 없는 전문 직종을 포기하고 월급을 줄여가며 직장을 옮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엄마가 된 이후 나의 모든 선택에서 나는 2순위이다. 대부분 엄마가 그렇겠지만 내 삶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아이와 가족이었다. 하지만 경기도 끝에서 서울 한복판으로 아침 8시까지 출근하고 주 20시간을 필수로 야근하는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은 단 하나였다. 내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나오고 졸린 눈을 할 때 집에 도착해야 했던 것.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영상 속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제외하곤 돌이 갓 지난해부터 4살까지 내가 담고 있는 모습이 없었다. 가족이 1순위라는 내 마음과 다르게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아이는 점점 이쁘고 더 사랑스러워지고 있는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반면에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맘카페는 집에서 자차로 20분 거리에 있었으며 출근 시간도 늦고 퇴근도 빨랐다. (물론 우리 운영자들은 퇴근 후에도 카페를 모니터링한다.) 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유치원이 끝나면 데리러 갈 수 있었다. 내가 아이의 아침도 먹이고 저녁도 먹일 수 있었다. 맘카페에서는 일과 삶의 경계가 정확하진 않지만 내 몸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고 커뮤니티에서 아이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아이와 한 것들도 가능했다


3년이 걸려 취득한 1급 점역사 자격증도, 제때 따박따박 나오는 (매년 오르는) 안정적인 월급도 그 기쁨에 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하기까지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쉽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내가 이런 고민을 할 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내 손을 들어준 사건이 하나 생겼다.      


내가 점역사로 일하던 직장은 매우 보수적인 직장이었다. 윗분들의 갑질, 막말, 직원들에 대한 하대가 매우 심한 회사였다. 돌이켜보면 정말 어떻게 참고 다녔을까? 하고 생각될 정도다. 하루는 이전에 치과에서 치료한 앞 윗니가 깨졌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웃긴가! 다행히 점심시간 전이여서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치료하면 먹을 수 없고 먹지 않고선 일을 할 수 없으니 당시의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팀장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10분 먼저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를 치료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사무실에 들어와 일했다. 그날 오후 팀장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10분 밥을 일찍 먹은 것을 보고 관장님이 한 소리 했다고 말이다.


우리 회사는 평소 9시 ~ 6시 근무지만 기독교재단이라는 명목으로 매일 아침 예배를 드렸다. 작곡이나 피아노 등 음악을 전공한 음악 점역사들이 이십여 명이 되었는데 우리는 순번을 돌아가며 8시까지 출근해서 예배했다. 물론 이 시간은 월급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순번을 돌아가며 회사의 자회사쯤 되는 경기도 양주(2시간 거리)의 요양원에 가서 반주도 해야 했다. 이것 역시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만삭 때 빼고 늘 했던 일이다. 이 일 뿐만 아니었지만, 그 순간 회사에 모든 것들이 서운했다. 그때 마침 아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회사 옮길 생각이 있어? 아는 사람이 직원을 구한다는데 언니 생각이 났어. 이력서 넣어봐!”      


나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기보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바로 추천받은 구인 사이트에서 모집 요강을 살펴보았다. 어! 재미있겠다! 나하고 맞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며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심을 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기분이었다. 밤 8시에 면접을 보고 다음 주에 바로 합격통지를 받았고 3/19일 날짜로 퇴사를 했다. 퇴사기념으로 가족들과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했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였지만 한 번도 가보지곳 한 곳에서 충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김포로 돌아와 다음날 23일부터 출근하였다. 이전에 회사에 느끼지 못한 분위기, 그리고 업무, 너무나 새롭고 다른 일들이었다. 늘 회원과 소통하고, 소통할 방법을 찾고 카페 내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맘카페에 일하면서 일속에서 재미있는 일은 많이 해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손에는 폰을 쥐고 있고 새벽에도 주말에도 명절에도 휴가 때도 카페를 모니터링하지만 한아름상회, 바디챌린지와 체육대회, 김포시의 다양한 축제진행, 경기도 꿈의 학교 인풀루언서가 되다 운영, 엄마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각종 강연 주최, 사생대회 주최, 반찬기부행사, 유튜브 촬영 및 편집 운영, 네이버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 등 몇 년 동안 재미있는 일들을 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정보를 얻고 색다른 자극을 받았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 또한 이 다양함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내 아이학교를 직접 등원시켜 주고 하교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내가 맘카페에서 경험한 일들의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하게 또 풀어보고 싶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재미있는 일을 놓치거나 기회를 잃는 것이다.

호리에다카후미의 <가진 돈을 몽땅 써라>       


내가 돈이나 나의 경력 때문에 이직을 망설이고 고민했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내가 경험했고 그것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