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내 팔자야.
샤넬 백도 아니고 고작 배추 때문에 오픈런을 하게 될 줄이야.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H마트 배춧값이 미친년 널뛰듯 하니 느긋하게 앉아서 날짜나 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찌감치 차례는 정리했으니 이고 지고 장 볼 일 없이 설렁설렁 개 보름 쇠듯 지나갈 추석이지만, 그래도 쇠고기 뭇국엔 잘 익은 배추김치가 송편엔 깔끔한 나박김치가 환상의 커플이고 영혼의 단짝 같은 것이니 어쩌랴. 우편함에 꽂혀있는 전단지를 움켜쥐고 조금이라도 더 싼 배추 찾아 삼만 리. 아침 여덟 시에 나서기를 사흘째다. 하루는 배추를 담날엔 세일이라는 이유로 열무를, 이게 도데체 뭔 일인지.
며느리들의 적 추석이 다가온다. 한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을 들으며 선물 꾸러미를 들고 설레는 맘으로 고향을 찾는 인파가 역마다 뒤덮였었지만, 요즘은 명절이 다가올수록 머리는 지끈거리고 스트레스로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바깥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라는 기사가 도배를 한다. 하루 세 끼 먹는 당연한 일이 사치로 여겨질 만큼 가난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건너, 먹을게 차고 넘쳐 세 끼도 모자라 디저트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는 세상이 됐으니, 명절이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그래도 나에겐 명절은 명절이니 뭐라도 좀 해야겠지.
어릴 적 추석은 종댕이를 들고 엄마 따라 솔잎 뽑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야트막한 언덕 키 작은 소나무에 매달려 그 해에 새로 자란 솔가지 끄트머리 솔잎을 톡톡 잡아채 깨끗하게 뽑아야 하는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엄마 혼잣손이니 알량한 내 손이나마 보태야 했다. 막내딸 노릇이 끝나고 외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으니 송편 빚는 일까지 내 몫이 됐다.
밤새도록 불린 쌀을 바구니에 건져 물을 빼, 이른 아침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를 말랑말랑하게 익반죽해서 마르지 않도록 젖은 베보자기로 덮어놓는다.
차례상에 오를 거피팥 송편을 빚어 가마솥에 솔가지 겅그레를 얹고 솔잎을 깔면서 켜켜이 쌓아 올려 찐다.
어깨가 내려앉도록 하루 종일 송편을 빚고 쪄서, 찬물에 씻어 참기름 발라 다라이 가득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고 나면 처마 끝에 매달린 전깃불이 켜지고, 송편 같은 달 속에서 떡방아 찧는 옥토끼 그림자가 보일 때쯤 치지직 소리를 내며 달궈진 번철에 녹두전 반죽이 올려진다.
"사람은 불에 볶아두 삼 년은 견디니라."지쳐 쓰러질 지경인 내게 한 시어머니의 말씀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없는 살림에 다홍치마 색동저고리거나 간따꾸 한 벌은 입혀주셨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라 쓴 글을 삼월이라 읽으시는지 새경 없는 종년처럼 부려 먹기만 했고, 그 후로도 쭈~~~욱 엄마 말씀 거역한 죗값을 그렇게 치러야만 했다.
내 아들이 자라기만 하면 나도 기세등등한 시어머니가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사이 세상이 변했다.
서슬 퍼런 시모(媤母)는 개뿔!!
연휴 긴데 어디 안 가니? 통화 중에 아들한테 물었더니, 명절 연휴에 나가봐야 고생이니 집에 가서 송편이나 먹죠 뭐,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추석이니 송편이나 먹자. 그 '송편이나 '는 내가 떡쌀 불려 빻아 반죽하고 빚어, 남이 뽑은 솔잎을 사서 깔고 쪄, 차가운 물에 씻어 건져 참기름 발라 하얀 광목 보자기 덮어 놓으마. 며느리 좋아하는 식혜도 한 솥 삭히고.
시에미가 별건가. 며느리 늙은 게 시에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