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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 3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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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건너 몇 사람만 따라가면 연중무휴 이 십사 시간 전국구 카스 장이 펼쳐진다. 채소의 귀족 아스파라거스는 강원도 양구에서, 깊은 산속 원목재배 표고버섯은 전라도 장흥에서, 일  내내 먹을 고춧가루는 완도에서 왔다.

    오늘도 징검다리 건너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도토리 앙금 백 킬로그램을 팔아서 깨복쟁이 친구 두봉이네 화목보일러를 바꿔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여름 폭우에 사방댐이 넘쳐 밤나무골 두봉이네 집이 물에 잠겼고, 못쓰게 된 보일러 교체 비용 삼백팔십만 원이 필요하다며 의리의 똘쑤니님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안 그래도 도토리 앙금 사야 하는데. 게다가 상수리 아니고 쌀도토리란다. 도토리라고 다 같은 도토리인가?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털모자 상수리는 둥글둥글 커서 줍기는 좋으나 묵으로 먹을 때는 찰기가 떨어져 부러지기 일쑤지만, 뺀질뺀질 꼬마 미사일처럼 생긴 빵모자 졸참나무 도토리 앙금으로 묵을 쑤면, 찰방찰방  튕길듯이  찰 져, 가늘게 썰어도 낭창낭창 휘어질 뿐 잘 부러지지 않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더라고 마음에 쏙 드는 도토리 앙금을 봤으니 얼굴도 모르는 두봉이네 보일러 값도 보탤 겸 이 킬로를 주문했다. 바싹 말린 앙금 가루가 위생 팩에 한번, 지퍼백에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은박봉투에 꽁꽁 싸인 채로 왔다.

     두툼한 냄비에 도토리 앙금 한 컵과 물 여섯 컵을 붓고, 휘휘 저어 한 시간쯤 두었다가 딸깍 가스 불을 켜고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서 묵을 쑤기 시작했다.

팔이 조금 아플 정도로 젓다 보면 밀가루 풀 쑬 때처럼 엉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펄떡펄떡 폭발하듯 끓으면서 푸우우 김을 뿜어낸다. 이때쯤 젓고 있던 주걱을 냄비 가운데 세워서 쓰러지지 않으면 다 된 거다. 왕소금 반 가락, 참기름 한 숟가락을 넣고 몇 번 더 저어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 오분쯤 뜸을 들이면 완성이다.

    네모난 그릇에 주르륵 부어 차갑게 식힌 도토리묵을 썰어보았다.

     하늘하늘 매끌매끌! 그래, 이 맛이었지!

     시판 묵 맛에 익숙한 딸은 조금은 낯선 듯한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옛날 우물가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항아리에서 떫은맛을 우려내던 엄마의 도토리묵 맛임을.

     며칠 후 도토리 앙금을 다 팔아 화목보일러를 새로 산 두봉이가 방바닥이 절절 끓도록 따뜻한 겨울을 나게 됐다는 반가운 글이 보일러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참 편하고 좋은 세상. 모르는 사람들끼리 핸드폰 하나 들고 앉아 잘도 사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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