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Editor. 성산
지난 2월 29일 노상호 작가의 개인전 <홀리>가 오픈했습니다.
밴드 혁오의 앨범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죠.
보통 미술관, 전시의 회화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커다랗고 두꺼운 캔버스, 사실적으로 그려진 풍경 혹은 도형과 선이 부유하는 추상화 등등.
이 작가의 그림은 왠지 SNS에서 우연히 본 밈짤, 핀터레스트에서 본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이는 작가가 주로 삼는 소재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가벼운 이미지를 조합에서 그립니다. 그리고 이번 개인전에서 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보통 AI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위협하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창착을 너무나도 손쉽게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그러나 작가는 그런 AI를 오히려 작품의 협업자처럼 이용합니다. AI가 생성해낸, 현실과 굉장히 유사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이미지들.
디지털이라는 세계는 물리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3D 프로그램에서 사과가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선 명령어를 입력해서 물리적 성질을 부여해야 하죠.
우리는 대상을 존재로 먼저 인식하는 반면, AI는 대상의 특징을 분석합니다. 학습한 것을 도출하고, 학습하지 못한 것은 도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손가락을 6개로 만들어버리거나 하는 등의 어색한 이미지를 생성해 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디지털 차원 속에서 만들어진 '그럴싸한 이미지'가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다른 점을 인식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미묘한 이질감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디지털-아날로그를 부유하는 동시대 환경을 은유하기 위해서요.
위층에는 가볍게 드로잉한 듯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보고 넘기는 '짤'처럼 가벼운 이미지 같은.
저는 페인팅이 현시대까지 유지되고 있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굳이 붓을 잡고 캔버스 위로 옮깁니다. 한없이 가볍게 소비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특성을 시각화하려는 것처럼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서로 대립점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동시대 이미지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작품과 태도가 굉장히 트렌디하지 않나요? ‘요즘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작업을 한다!’같은 느낌.
작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업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여주거나, 평소에 하는 생각을 전시하며 소통합니다. 작품이 보여지는 방식과 환경마저 작품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매일 드로잉한 것을 올리는 계정도 있습니다. 관심 간다면 한번 팔로우해보는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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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들었던 의문. 그림 속 이미지들은 왜인지 '서양'스러운 요소들이 많았어요. 서양 사람의 얼굴이라든지, 서양식 집이라든지.
만약 작가가 차용하는 이미지들이 단순히 취향이 아닌 AI가 생성해낸 이미지, 혹은 가장 많이 소비되어 노출된 이미지라면. 어찌 보면 이 안에서도 주류와 권력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