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몇 가지를 모아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 놀랍게도 나는 하나의 영화로 나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취향의 변화까지도 일으켜버린 영화. 흘뤼뉘르 팔메이슨 감독의 최신작 ‘Godland’이다.
이 영화를 추천해준 것은 새벽의 SNS였다. 피드에서 Godland를 처음 보았을 땐 흥미로운 영화가 개봉하는구나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다. 그러나 같은 추천글이 세번째 보인 순간부터 나는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영화의 간략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덴마크의 가톨릭 신부가 아이슬란드에서 방황하는 이야기. 신부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낀다.’
우선 나는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최근 북유럽 감성에 푹 빠져있던 내게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다룬다는 점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SNS의 알고리즘은 소름끼치게 놀라웠다!)
그리고 Godland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나는 영화를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 잔잔하면서도 불안해보이기도, 비장해보이기도 하는 신부의 얼굴. 나는 신부의 얼굴처럼 비장하게,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영화관에 갔다.
스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말하자면 인간은 정말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장센은 훌륭하고, 이 영화가 좋은 작품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만 Godland 속 신부의 방황이 가벼운 방황이 아니라 꽤 깊은 방황이었다는 점이 잔잔한 영화를 기대한 내게 아쉽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나의 상상속 북유럽식 인테리어 같은 느낌의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북유럽의 자연을 가감없이 담았는데 이 점이 작품의 주제와 어울려 우중충하면서도 가슴 섬짓해지는 북유럽 자연의 특성을 부각시킨다. 북유럽에 대한 나의 환상을 깨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Godland에는 인간, 그리고 그를 지그시 누르는 양심 같은 북유럽의 풍경이 담겨있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 결말부가 적막으로 흐르다가 큰 찬송소리와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