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외인성(外因性) 반응증세로서 나타난다. 동시에 사고장애(思考障碍), 양해나 예측의 장애, 환각이나 착각, 부동하는 망상적인 착상이 있고, 때로는 심한 불안 등을 수반한다. 환자의 환각은 때로 무대 위의 몽환적(夢幻的)인 정경을 보고 있는 것같이 감지되는 경우가 많다. 섬망상태에 있을 때는, 주위와 교섭은 환각이나 착각 등에 의한 착오 때문에 곤란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섬망 [delirium, 譫妄]
1.
오래된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때 나는 업무 출장이 매우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출장을 다닌다는 개념보다는 어쩌다 내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몹시도 피곤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출장에서 돌아와 몸을 씻고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새벽인지 아침인지 잠에서 깼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인지가 되지 않았다.
내가 잠에서 깬 이곳이 어디인지...
내 집, 내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음을 인지하게 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찰나의 순간 후 이내 내가 누워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등 모든 상황이 인지되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꽤 명료하게 오래 지속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기분은 순간 나 자신을 내가 놓친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꽤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꿈이 아니다.
분명 잠에서 깨어난 후의 일이다.
일종의 섬망 증상처럼.
이후로도 이런 경험은 더 있었다.
잦은 출장으로 잠자리가 자주 바뀔 때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곤 했었는데, 잠시 내 위치를 잊었지만 수초도 걸리지 않는 매우 짧은 순간 안에 현실의 나를 자각해 내곤 하였다.
2.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이층 집이지만 1층은 아버지의 사업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면적은 2층의 10여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그 집에 처음 입주했을 때는 10평 미만의 집이었다. 방 하나에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2층 그 공간에서 부모님과 누나와 내가 한방에서 살았다.
훗날 집을 증축하여 방이 2개가 되었을 때 두 살 터울의 누나와 내가 새롭게 생긴 미닫이 유리문이 있는 방을 같이 쓰고 나이 어린 동생과 부모님이 더 큰 안방을 사용했다.
더 훗날 옥상에 옥탑방을 만들어 방이 더 생겼기 때문에 다섯 식구가 올망졸망 살아가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점점 넓어졌으니 불편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듯하다.
부모님은 다섯 식구가 함께 살다가 누나가 시집을 가고, 내가 독립을 하고, 막내까지 시집을 간 그 집에서 재작년까지 두 분이 지내셨다.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가 이제는 남의 집이 되었다.
아직도 그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그냥 흘러가는 일상의 생활을 하고 있는 두 분과 함께 사는 그런 꿈을...
꿈 이란 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더 자주 그 공간에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지만, 그저 내 꿈일 뿐이다.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 스쳐가는 꿈같은 꿈일 뿐이다.
3.
오늘 새벽, 잠에서 막 깨었을 때 오랜만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잠깐 놓쳐버렸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떴는지 감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잠이 깬 것은 확실하다.
꿈이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의 일이다.
마치 섬망 증상처럼.
내가 어디에 있지? 생각을 하는데 희미하게 T.V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 나는 2층 방 안에서 잠을 자다가 깨었고, 미닫이 유리문 넘어 안방에서 엄마 아빠가 T.V를 보시는구나.
이제 엄마가 밥 먹으라며 나를 깨우시겠구나.
내가 있는 이곳이 2층 미닫이 유리문 안쪽의 방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아주 짧은 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꿈이 아닌 현실에서 잠시 동안 - 아주 짧은 잠시동안, 부모님과 그 집에서 살았다.
동향이어서 해가 유난히 빨리 들어오는 미닫이 유리문 방안에 누워서, 안방에서 T.V를 보고 계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
현실의 나를 자각하고도 잠시 동안을 더 누워 있었다.
누워서 짧게 지나간 섬망 같은 순간을 곱씹었다.
꿈이 아니다.
나는 오늘 새벽에 두 분과 함께 있었구나.
고맙게도 이런 기적 같은 섬망도 있구나.
그런데 T.V소리는 어디서 들린 것일까.
4.
7월 폭우 속에 엄마가 떠나셨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눈앞을 내다보기가 힘든 폭우 속에 엄마가 떠나셨다.
몇 달 후 쏟아지는 폭설 속에 아버지가 떠나셨다.
쏟아지는 폭설에 눈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설 속에 아버지가 떠나셨다.
2년 전 오늘, 그렇게 폭설이 쏟아졌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내린다.
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건만, 눈이 쏟아진다.
섬망의 상태가 되면 갑자기 정신이 흐려지고 혼미해지면서 의식의 변화가 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주변환경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환경과 자신과의 관계도 파악하지 못한다. 시간이나 장소, 사람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