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영 Apr 03. 2023

류이치 사카모토 빠이

다섯 장의 앨범


#류이치사카모토 가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그를 많이 사랑했다. 그가 만든 세계에서 많이 헤엄쳤고 많이 상상했고 많이 헤맸다. 이상하게 그의 음악은 앨범째로 들을 때가 많았다. 다섯 장을 골라 봤다.


제일 많이 들은 앨범은 #BTTB 다. #energyflow 가 수록된 앨범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정말 죽는 거라면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듣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어드메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슬프지만 우아하고, 잔잔하지만 힘이 있다. (그날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떠올렸던 다른 곡으로는 칸예의 only one 등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HC_yMY9N0I


가장 최근에 열렬히 사랑했던 앨범으로는 #UTAU 가 있다. 반세기 가까이 우정을 쌓은 오누키 타에코가 보컬을 맡은 음반이다. 앨범 트랙을 쭉 들을 때마다 속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신선놀음 같은 음악이라고 (내멋대로) 생각했다. #Poppoya 라는 곡을 특히 좋아하는데, 들을 때마다 그리운 집밥 같다. 일본 가정식 풍의 집밥. 물론 우리 엄마는 일본 가정식 스타일로 요리를 하지 않는다. 히로스에 료코가 한창 예쁠 때 나온 영화 ‘철도원’의 테마곡이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eYDlD8o7UE


왕가위 영화를 생각나게 하는 앨범 자켓 때문에 집어든 #음악도감 도 애틋하다. 에너지는 넘치고 이룬 것은 없던 20대 초중반, 이 앨범을 들으면서 조바심을 달랬던 적이 있다.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경리단길이나 정동길 같은 곳을 걸으며 들었지 아마. ‘A Tribute to N.J.P.’라는 곡을 특히 좋아했는데, 이 NJP가 백남준이라는 걸 알게 된 건 30대가 돼서였다. 섹소폰 솔로에 피아노가 덧입혀지는 부분이라든지, 후반부에 스리슬쩍 끼어든 남자(백남준)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지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AQ2EUx94PU


사카모토는 젊은 시절 #YellowMagicOrchestra 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었다. #YMO 의 베스트 앨범도 즐겨 들었었다. 30개의 수록곡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요즘도 가끔 듣곤 하는 ‘Perspective’를 고르겠다. 70년대 말 - 80년대 초의 일본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세련됐는지 보여주는 노래다. 세션이나 녹음의 품질도 훌륭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17KzZ5wjI


‘1996’도 사실상 베스트 앨범이나 다름없다. 두 곡을 제외하면 다 기존 작품의 피아노 트리오 버전 편곡이다. 당연히 그 유명한 #MerryChristmasMrLaurence 도 수록돼 있다. 이 앨범의 버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 전 곡이자 이 앨범에 실린 두 개의 신곡중 하나인  ‘1919’ 때문이다. ’1919‘가 끝나고 다음 트랙인 ’Merry Christmas Mr. Laurance’가 시작되기 직전의 잠깐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나는 이 찰나를 위해 사카모토가 ‘1919’를 작곡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 심증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써봤지만 아직 증거는 찾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OZDaRhHHyM


얼마 전에 친구랑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는 더이상 누구도 그리고 아무것도 위대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위대했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뽕을 찾기는 찾아야 하지 않겠냐던.

작가의 이전글 우리 모두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