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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Aug 18. 2019

엘리트들의 무의식적인 위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독식사회>를 읽고

<엘리트 독식사회 Winners Take All>.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 시대 엘리트들의 무의식적인 위선을 비꼬는 책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며 추천한 이선재님 덕분에 읽게 됐다.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상위 10%와 1%의 소득은 두세 배가 넘게 증가했지만 하위 50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윈-윈식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엘리트들은 녹색 채권이니 임팩트 투자니 하는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의 시스템은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구성원들이 시스템을 옹호하도록 만든다. '악에 도전하는 것보다 선을 건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수익을 쫓으면서도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존재한다.' '사회 문제를 더 잘 해결하고 싶으면 공공보다는 민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비판을 할 때에는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기업의 제일 중요한 임무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저자가 특히 분노하는 건 '지식소매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그들이 오르는 무대인 각종 컨퍼런스들이다. 조너선 하이트, 니얼 퍼거슨, 애덤 그랜트, 월터 아이작슨 같은 사람들은 TED와 다보스 등에 초대받아서 시스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그 대가로 일반적인 지식인이 누릴 수 없는 경제적인 지위를 획득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본인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전엔 맥킨지에서 애널리스트를 했고, TED에서 강연도 두 차례 했고, 강연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밖에도 저자는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주로 맥킨지나 골드만삭스 등에서 사용하는)이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친다거나,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번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만으로도 면죄부를 획득한다거나, 대중을 계몽과 도움이 필요한 객체로만 여기는 태도 등을 비판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부분 공감하는 편이다. 특히 세상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실리콘밸리식 낙관주의에 대해서는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는 편이었다. 장기와 단기, 부분과 전체, 이쪽과 저쪽의 이해관계는 충돌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교집합을 찾아야겠지만, 때로는 투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그 투쟁이 보편적 규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는 거고.


그러면 트레바리는 이 책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창업자와 직원, 그리고 주주를 만족시키면서 세상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트레바리가 아니었더라면 읽지 않았을 책, 쓰지 않았을 책, 하지 않았을 생각, 이어지지 않았을 인연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족하지 않은 고객도 있었고,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떠난 동료도 있다. 앞으로도 우리가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광이 드리우는 그늘도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겸손함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인 냉소와 대책없음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기 어려웠다. 물론 모두가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문제의식을 주지시키는 역할도 의미가 있다. 다만 스스로에게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불완전하게나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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