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일장이 들어선대!" 어린 마음에 설렜던 그 소식은 온 동네를 들썩이게 했다. 여주 가남면 태평리의 면사무소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장터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타지에서 온 어르신들과 아이들까지 한데 모여 장터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원숭이 서커스 한다더라!"
원숭이가 재롱을 부릴 때면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장터를 가득 메웠다. 그렇게 장날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축제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나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근사한 레스토랑보다는 허름한 재래식당에서 더 즐겁게 느껴졌다.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식당 특유의 냄새는 어린 시절의 시골집을 떠올리게 했고, 혼자 살며 그리웠던 엄마의 손맛을 닮아 있었다.
"이 집, 된장찌개 맛이 진짜 옛날 같아. 고향 생각나지 않아?"
혼잣말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술 한 잔은 늘 고향의 온기를 품었다.
첫 직장에 출근하는 길가에는 공덕동 재래시장이 있었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시장에서 풍겨져 나오는 사람사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요즘에는 재개발로 흔적조차 없지만, 그 당시 공덕동 재래시장은 우리 직원들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어제 해장국 집 갔어? 국물 끝내줬다며."
아침부터 국수와 모닝주를 곁들이는 동료들, 점심이면 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기울이는 모습이 익숙했다.
"써니야, 너랑 술 먹으면 늘 재밌어. 우리 영업 같이 해볼래?"
영업부장의 이 말에 얼떨결에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술상무’로 이 바닥에 남아있다.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 장소로 자주 찾았던 곳은 광장시장이었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남편과 달리 나는 남편 친구들과 맑은 소주를 즐기며 전통 시장의 매력을 만끽했다.
"여기 육회 진짜 맛있지 않아?"
"나는 육회보단 저 도토리묵이 더 좋아."
고급 식당에서 시작된 접대도 결국은 재래식당에서 마무리되곤 했다. 어쩐지 그런 마무리가 사람들 사이를 더 가깝게 이어주는 듯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성수다. 요즘 성수는 핫플레이스로 유명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곳은 뚝도시장이다.
"뚝섬이 왜 뚝섬인지 아니?"
"몰라요, 그냥 이름인 줄 알았는데요."
조선시대에 성동구 일대 일부를 '뚝도'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직원들과 그 골목을 거닐곤 한다.
뚝도시장은 젊은이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 순대볶음 진짜 맛있대. 같이 가보자."
"다음엔 저 골목 집도 꼭 가자!"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재래시장은 단순히 장을 보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아트플레이스가 되었다.
재래시장은 내게 과거의 추억, 현재의 즐거움, 그리고 미래의 기대를 담은 특별한 공간이다. 그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가 된다.
"다음에 또 오자. 여기 올 때마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져."
그렇게 재래시장은 언제나 내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