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코로나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IT업계는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우리 회사만 해도 매출과 마진이 회사설립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에 직원들 인센티브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 1월 2일,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신년회가 열렸다. 우리 회사는 매년 신년회에서 입사 5년, 10년, 20년을 기준으로 감사패와 금을 증정한다. 올해 나는 입사 20년이 되는 해였다. 동료들은 내 방에 20년 축하 화환과 20돈 금을 전달하며 축하해 주었지만, 정작 그 자리에 주인공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1. 산행 중 사고로 병원 신세
2023년 12월 28일, 연말 많은 송년 모임으로 지친 나는 이른 아침부터 산행하며 몸을 풀었다. 눈이 거의 녹아 아이젠 없이 등반했고, 출근을 서두르다 내려오는 길에 살짝 뒤로 미끄러지면서 팔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동행한 선배는 괜찮을 거라며 빠르게 하산하자고 달려 내려갔다. 뒤따르던 나는 식은땀에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보인다. 도착한 병원에서는 팔목이 두 동강 나고 뼈가 으스러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선배 언니가 수술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굳게 하자고 나를 설득하는 바람에 일단은 뼈만 마쳐놓고 퇴원했다.
회사로 돌아온 나는 깁스를 하고 사장 방으로 향했다. "골절을 자연 치유하겠다고? 자네가 조선시대 자연인입니까? 당장 수술하세요!" 어이없어하며 강하게 말씀하셨다. 결국 12월 마지막 날 입원하여 23년 연말과 24년 연초를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 올해 말에는 팔목에 장착된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입원할 예정이다. 이번 사고를 끝으로 올해의 액운을 모두 털어내고 싶다.
2. 몽블랑 트레킹의 악몽
2주 동안의 몽블랑 트레킹을 계획했지만, 떠나기 전날까지 일이 많아 여행을 취소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회사와 일 관련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단 떠났다, 여러 문제로 전화가 끊이지 않고 왔다. 그보다 더 최악은 동행자 간의 다툼이었다. 비행기 오르기 전부터 불길한 일이 있더니 끝내 여행을 망쳐버렸다. 4명이 떠난 여행은 2명씩 나눠 트레킹을 했고 돌아오는 길은 3명만 오게 됐다. 가이드도 없이 트레킹한 우리는 높이 2키로미터가 넘는 눈산을 오르다 몇 번 목숨을 잃을 사건까지 경험했다. 몽블랑의 아름다운 산세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중간에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3. 미국 라스베가스 출장
갑자기 회사에서 본사 Dell 테크놀로지 행사차 라스베가스를 가게 됐다. 출장 후 2주 후에 몽블랑을 가야 하는 나는 기쁨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이 갑자기 많아졌고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국세청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출장에 휴가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회사 창립 멤버인 관리부 여자 부장이 같이 가길 원했다. “전무님 가시니까 저도 사장님께 얘기해서 같이 가면 좋겠어요?” “최부장님, 제가 일정이 꼬여 출장은 무리일 것 같은데 어쩌죠?” 하지만 관리부장은 애원한다. “전무님이 꼭 가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가죠.” 최부장의 적극적 욕망에 사장님이 허락하셨기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리부 부장이 같이 가게 되어 출장 경비가 넉넉해 좋긴 했다. 아들이 여름방학 시작 시점이라 마지막 시험을 치고 라스베가스로 와 동행했다. 혼자 방 하나를 쓰기에 같이 지낼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우리는 LA로 먼저 도착해 ‘LA 다저스’ 오타니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여유도 가졌다. 그날 오타니는 홈런을 쳤다. 가기 전 6개월 이상 영어 공부한 나는 미국 도착하면 직접 원어민들과 대화해볼 기회가 생겼다. 열심히 외워 온 나는 체크인부터 시작했다. 말은 내뱉었지만 전혀 들리질 않는다. 몇 번의 시도를 해봤지만 쉽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이 우리의 가이드가 되었다. 본사 사람들과 커뮤티케이션 장이 마련됐지만 내 영어 실력이 바닥이라 함께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웠다. 25년 만에 간 라스베가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들은 새롭게 지어진 곳이 없다. 25년 전에는 라스베가스가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한국의 밤이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 출장 일정을 마무리하고 근처 그랜드케년과 몇 군데 도시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루 한 번 본사 행사만 마치고 여직원이 원하는 종일 땡볕을 걷기를 같이했다. 그 덕에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했기에 나쁘지 않은 출장이었다.
4. 가족 대만 골프 여행
남편이 골프하겠다고 이것저것 사놓은 골프채들을 모아봤더니 골프 한 세트가 만들어졌다. 아들학교에 골프장이 있다고 해서 여름방학 동안 골프를 배우게 했다. 2달 정도 배우더니 생각보다 잘 친다. 골프 첫 플레이를 ‘머리 올린다’라고 하는데 내가 직접 아들 머리를 올려주고 싶었다. 국내도 있지만 여행 상품 중에 대만 골프 상품이 싸게 나와 있는 걸 여행사 친구를 통해 얻었다. 3박4일 주말을 이용해 급하게 떠났다. 남편은 체력이 안 좋아 골프 내내 더위에 지쳐 힘들어했다. 골프를 3번 쳤는데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골프 실력이 좋아졌다. 짧지만 오랜만에 의미있는 가족여행이었다.
5. 일본 골프 투어
올해는 팔 골절로 골프를 줄였는데 업무적으로 골프 치자는 사람들이 그래도 많다. 몇몇 업계의 지인들이 올 초부터 제주도나 일본 골프투어를 요청했는데 계속 미루다가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로 가게 되었다. 8명으로 구성해 떠났다. 고객을 모시고 간 여행이 아니기에 자유롭고 편했다. 두 번째 날부터 한 친구가 왠지 불만에 썩인 눈초리로 우리를 대한다. 골프 내내 말 수도 적고 전체 분위기를 어둡게 해 마음이 쓰였다. 우리는 그 친구의 행동에 분위기를 맞춰 주려고 나름 많은 신경을 썼지만 그 친구는 한국에 도착 후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이유인즉, 첫날 술을 마실 때 우리 회사에서 같이 간 7살 위인 유지보수 직원이 자기에게 반말했다는 불만과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친구였기에 여러 소통을 맡겼더니 그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이유인가? 나름 친했고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는 사람들끼리 간 여행이었는데 그 친구가 이리도
옹졸한 사람이었다니 정말 여행을 가봐야 사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여러 여행을 통해 사람 관계함에 생각지도 않은 행동들, 새삼 사람을 이해하기 쉽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6. 매일 글쓰기 도전
작년에 독서를 하면서 글을 써보자는 제안에 100일 글쓰기 도전을 했다. 어휘력도 약하고 글쓰기는 어려서는 일기, 지금은 회사 발표 자료인 딱딱한 보고서를 쓸 뿐이었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게 쓰다 보니 매일 쓴다는 게 시간적 부담과 주제 없이 내용을 끄집어내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글쓰기 재미를 잃었다. 그 후 글 쓰기를 접고 독서만 해나갔다. 그러다 3개월 전 매일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맞게 글을 쓰는 수업을 소개받았다. 작년과 다르게 주제가 있어서 그런지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드려다 보고 창의적인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3개월째 전혀 스트레스 없이 써내려 가고 있다. 쓰다 보니 문장의 논리와 감성이 부족함을 느낀다.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글 쓰기를 계속하면 혹시 책을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7. 마이너스 딜 수주
올 초 몽블랑투어와 본사 출장 중에 15년 된 고객사에 중요한 사업 건이 있었다. 여행 중에 회사 실무 영업과 벤더 영업, 고객을 포함에 중간중간 정리를 하며 딜 정리를 했지만 예산 문제로 해결할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다. 벤더는 무조건 수주해야 한다는 것이고 고객측은 올해는 포기하고 경쟁제품으로 그냥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내 맘 같아서는 마이너스 딜이기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여러 관련자가 수주를 원하기에 어쩔 수 없이 수주했다. 출장과 여행 중 깊이 고민하지 않고 수주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30억짜리 딜이 20억도 안되는 금액으로 수주한 것이다. 회사에 너무나 큰 손실을 입혔다. 매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큰 고객인데 만나면 미안하다고만 한다. 점점 할말이 없어지면서 어색해지고 말았다. 내년엔 IT경기가 더 좋지 않다는 전망이 나왔다.
회사에 큰 손실을 남긴 이번 건은 앞으로의 영업 방향을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다.
8. 조찬 CEO 북클럽
책 저자들의 강의를 직접 듣는 북클럽에 참여하며 지적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저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다.
다른 모임처럼 앉아 있는 사람과 의미 없이 아는척할 필요는 없다. 롯데 호텔에서 럭셔리 아침 식사를 하면서 강의 듣고 바로 회사로 출근하면 시간 또한 적당하다. 진행 사를 통해 내가 만나길 원하는 저자들과 연결하여 만날 수도 있다. 저자 중 한 분이 내 주치의가 되시기도 했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모임이다.
9. 기계치에서 탈출
집에서는 늘 남편,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도와주기에 스스로 고장난 노트북, 핸드폰, 각종 앱 가입을 하려 하지 않기에 기계 만지는 걸 어려워한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배움의 길로 들어서면서 모든 것을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지금은 인스타그램도 시작했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영어 앱을 활용해 공부하며, 혼자 해외여행을 가서, 보고 싶은 여행 장소도 찾고, 맛집도 찾고, 여행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조인하며 즐기는 나만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
10. 아침 3시 30분 기상
2년 전부터 이른 아침 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갖고 있다. 처음에는 5시, 4시 반, 천천히 당겨지더니 올해부터는 3시 30분에 기상을 하고 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지개를 켜고 이를 닦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영어가 끝나면 10키로미터씩 매일 서울숲을 달린다. 상퀘해진 몸과 마음으로 아침을 먹으며 바흐의 클레식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아침 5시간,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다.
이렇게 꾸준한 아침 루틴은 나에게 창조적 생산성을 만들어주고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다녀온 일본 후쿠오카를 한 번 더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24년 나의 10개 뉴스를 생각해 써본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해외행, 올해는 출장과 고객 접대로 많이 다닌 해였다.
올해 10개 뉴스 중 내가 뽑은 최고의 1위는 새벽 3시 30분 기상이다.
올 한 해 잘 해낸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싶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꾸준함도 노력인 것이다.
늦게 배움의 길에 빠지면서 앞으로 더욱 변화될 내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