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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Dec 15. 2023

수다쟁이들의 나라 프랑스

침묵이 금이 아니다. 돌이다.

침묵이 '금'이 아닌 나라 프랑스



프랑스 사람들은 수다쟁이다. 쉴 새 없이 떠든다. 우리 선조들은 '침묵은 금이다!'라고 했던가? 프랑스는 그런 말이 안 통하는 나라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터에 모여 수다를 떤다. 아주머니들이 수다로 밤낮을 지샐 수 있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것 같다. 그런데 프랑스는 남자들도 수다를 잘 떤다. 프랑스는 남자들도 엄청난 수다쟁이들이다. 프랑스는 아페로(식전 주)라는 문화가 있는데 아이들의 학교에서 친해진 가족들끼리 서로의 집들을 오가며 아페로를 즐긴다. 아페로는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사교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가벼운 술과, 소금에 절여서 말린 돼지고기, 칩스, 그리고 짭짤한 과자 몇 조각, 신선한 야채를 소스에 찍어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엊그제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수두에 걸려 왔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열만 나지 않으면 평소처럼 학교에 보내라고 했다.



우리 딸아이가 수두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웃집 베르지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에 자기 집에서 아페로를 하자고 했다. 베르지니는 남편 질과 동거(PACS)의 형태로 함께 살며도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 큰 딸 아이리스는 수두에 걸렸고, 둘째 딸 샤를린은 아직 수두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수두는 어릴 때 한 번씩 앓는 게 좋다고 하면서, 내 딸아이를 사를린과 함께 놀게 하면서 수두를 옮겨 달라고 했다.



프랑스 엄마들 중에는 아이들은 자연면역력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많다.  딸아이의 수두 덕분에 벼락 모임이 만들어져, 베르지니와 질 그리고 내 남편과 나는 베르 지니의 집에서 아페로 주를 마시며 긴 수다를 떨었다. 베르 지니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물 항아리가 깨어질 듯한 큰 목소리로 질과 연애하던 때의 소소한 에피소드, 스리랑카를 다녀온 이야기, 얼마 전 다녀온 리옹 크리스마스 불빛축제 이야기를 했다. 집을 산 이야기며, 본인들이 산집을 몇 년도에 얼마에 샀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프랑스인들은 솔직하다. 베르지니 남편도 베르 지니에게 뒤처지지 않은 수다 쟁이었다.



질은 20대 젊음 여행으로 보냈다고 했다. 아프리카며, 남미 북미를 배낭하나 메고 다녀왔다고 했다. 그때의 무용담을 긴 시간 동안 지치도 않고 떠들었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말을 재밌게 잘한다. 지루하게 주섬주섬 널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 속에 알맹이가 있다. 수다 속에도 한두 개씩 건져갈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한다. 프랑스인들에게 여행은 삶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우리 탈북민들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중국을 거치게 된다. 나도 17살 어린 나이에 말랑말랑한 두뇌를 가지고 있을 때 중국을 거쳐 오느라 중국어를 익혔다. 동네 공원에서 친해진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파스칼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입담이 거친 아주머니다. 파스칼에게는 엥게항이라는 19살 난 아들이 있는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이번 학기에 중국어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원래는 일본어나 한국어 수업을 들으려고 했는데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중국어 수업에 등록할 수밖에 없다.



나는 프랑스에서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혼자 육아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 오후 공원으로 매일같이 오가다 보니, 공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들과 동료가 됐다.  프랑스 공원에는 그 동네의 터줏대감 누누(베이비시터)들이 있다. 파스칼도 동네 공터에서 인연을 맺었다. 엄마를 보러 공원으로 왔던 파스칼의 작은 아들 엥겔항이 중국어를 배워달라고 했다. 파스칼은 내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동네에 프랑스 인과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중국인이 있는데 내가 그녀와 중국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들었다고 했다. 그 후부터 엥겔항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동네공원으로 나를 보러 왔다. 나는 엥케항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엥게항은 나에게 고급스러운 프랑스어 표현들을 알려줬다. 19살 젊은 프랑스 청년이 두 아이의 엄마인 서른여섯이나 먹은 외국인 아줌마에게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학교 이야기며, 여자친구 이야기,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얘기, 앞으로 갈 여행이야기, 등등 중국어를 배우기보다는 본인 이야기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프랑스인들에게 대화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우리 가정도 저녁시간은 꼭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정성 들여 준비한 가정식들을 식탁에 차려 놓고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다. 식사 시간에 티브이는 없다.  기타 스크린도 지닐 수 없다. 부모도 예외는 없다. 아이들은 쫑알쫑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부모에게 하고, 부모들은 귀 기울여 듣는다. 가끔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상한 질문도 해온다. 어떤 질문이든 귀를 기울여 듣고 정성껏 대답해 준다.


 


프랑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각자 본인들만의 인생철학이 있다. 그 인생철학들이 사람마다, 배경으로 삶고 있는 문화권마다 굉장히 다채롭다. 굳이 자기가 맞다고 으스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우리네 인생길이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대화를 통해 나를 찾아가고, 삶에 중심에는 '나'가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간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무엇을 가장 즐길 수 있는지 잘 아는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각자만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이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인생에서 때때로 강풍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 가끔은 그들의 신념이 '고집'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각자 성실하게 본인들의 믿는 신념을 지켜가며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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