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환학생의 일기 2
교환학생 가는 것이 확정된 이후 세웠던 가장 큰 목표는 ‘여행 많이 다니기’였다. 코로나로 인해 대입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기에 여행에 대한 갈망이 엄청났다. 당시에 나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쓰고 돌아와도 좋으니 최대한 많은 곳을 가서 보고 와야겠다는 열정으로 넘쳐났다.
2023년 8월 17일 개강 이후 맞이한 첫 휴일은 바로 9월 4일 노동절이었다. 노동절 연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다른 학교 교환학생 친구들과 나는 출발 1주일을 남기고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1달도 안되어있기에 가고 싶은 곳도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었다. 그래서 첫 여행지를 선정하는데 특히 더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냥 돌림판으로 정할까”라는 의견이 나왔고 우리의 첫 여행지는 운명에 맡기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정해진 첫 여행지는 바로 ‘덴버’였다.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다짐과 다르게 첫날 마주한 덴버는 솔직히 조금은 무서웠다. 내가 있었던 오클라호마는 매우 한적했고 주로 캠퍼스 안에서만 지냈기에 마약 냄새와 노숙자들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맡아본 마약 냄새와 처음 본 노숙자들로 인해 길거리를 걷는 것이 무서웠고 가게에 들어가는 것조차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맛있는 피자 냄새에 이끌려서 시카고 피자로 유명한 ‘지오다노스’에 들어갔다. 막상 가게 안에 들어오니 왜 지금까지 무서워서 아무 곳도 못 들어갔는지 스스로가 너무 웃겼다. 해보면 별게 아닌데 말이다.
배도 채웠고 무서움도 조금 없어져서 유니온스테이션 쪽으로 산책을 했다. 해질 무렵의 시간대와 가로등 불빛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내가 정말 미국에 있음을 실감시켜 줬다. 미리 예약해 둔 유니온스테이션 근처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너무 비싼 가격 탓에 음식을 많이 시키지 못했고 콩 한쪽도 나눠먹는 그런 웃픈 광경이 벌어졌었다.
2일 차는 덴버에 온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로키산맥’으로 향했다. 차가 없었기에 로키산맥을 가기 위해서 미리 투어 상품을 예약해 두었다. 아침 일찍 숙소 앞으로 가이드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셨고 로키산맥을 향해 출발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면서 달리다 보니 금세 로키산맥까지 도착했다. 국립공원답게 가는 길에 정말 많은 동물 친구들을 만났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귀여운 다람쥐들과 당당하게 차를 가로막아 지나가는 순록들까지 마치 에버랜드의 사파리 투어를 하는듯한 기분이었다.
차에서 내려 가볍게 트래킹을 했는데 그 고요함과 차분함을 잊을 수가 없다. 산맥을 둘러싸서 산의 모양을 반사시키는 맑은 물이 마치 거울처럼 느껴졌다. 광활한 산에서 큰 숨을 들이마시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좋은 것을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들이 잠시 그리워진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2일 차는 자연의 광활함으로 가득 채운 하루가 되었다.
콜로라도에는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쿠어스 필드’이다. 야구장이 고지대에 있어 공에 대한 공기 저항이 줄면서 타구가 더 멀리 뻗어나간다고 한다. 야. 알. 못이었지만 또 MLB 경기는 관람하러 가고 싶었기에 3일 차 날에는 야구 경기장으로 향했다. 쿠어스 필드를 가기 전에 덴버의 명물이라고 불리는 ‘블루 베어’를 잠깐 들렀다가 갔다. 파란색의 큰 곰이 건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 귀여웠다. 저 안에서 인간들이 무얼 하나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동상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게 되었다.
귀여운 곰을 보고 바로 쿠어스 필드로 향했다. 생애 최초의 야구 경기 직관이 MLB라는 것이 나를 더 기대되게 만들었다. 야구 룰도 잘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 반응을 보고 따라서 응원하고 실망하고 그랬다. 하지만 나의 첫 야구경기 직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비가 무서울 정도로 세차게 내렸고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이 갑자기 모이는 바람에 나와 내 친구 한 명은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다. 지붕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일행과 찢어지게 된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던 것 같다. 어디서 왔는지, 미국에는 뭘 하러 왔는지 등 갑작스러운 스몰토킹을 하게 되었고 마침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기에 한국어 몇 마디도 알려주었다. 비로 인해서 경기는 많이 보지 못했지만 새로운 인연을 가져다주었다.
비가 조금 그치자 경기장을 나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경기장 근처에 서점이 있길래 서점을 들어갔는데 알록달록한 표지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포스트잇에는 직원들의 짧은 서평이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비가 와서 속상했는데, 비가 또 다른 곳으로 데려다준듯해 나쁘지 않았다. 3일 차는 비 냄새와 책 냄새로 가득했던 하루였다.
짧았던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에도 엄청난 해프닝이 발생했다. 아침 7시 반 비행기였기에 미리 5시에 우버도 예약했는데 알람을 듣지 못하고 6시 반에 일어나 버린 것이었다. 시간을 본 순간이 너무 놀라서 잠이 확 깨버렸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 캐리어를 들고 잽싸게 숙소 밖으로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도 우사인 볼트 마냥 미친 듯이 달려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보딩 시간에 딱 도착했고 우리는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낯선 나라에 대한 무서움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넓디넓은 자연 속에서 힐링도 하고 그리고 날씨와 비행기까지 예상치 못한 일 투성이었지만 덴버 여행기는 나를 한층 더 성장시켜 주었다. 덴버 여행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당탕탕"으로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