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
영화 줄거리
밥 해리스는 영화배우이고, 일본에 cf촬영을 위해 출장을 왔습니다. 촬영장에조차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영어를 하더라도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워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죠.
샬롯은 사진작가인 남편의 출장에 동행하여 일본에 왔지만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가고 항상 혼자 호텔방에 있게 됩니다. 시내로 구경을 가보지만 영어로 적힌 안내도, 간판도 없는 곳에서 샬롯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갈 곳은 호텔바와 수영장밖에 없었죠. 호텔 바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밤의 고요함과 외로움에 지쳐 잠에 들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언어가 같지만 마음의 소통이 부재한 사람들도 주인공인 밥과 샬롯의 외로움을 깊게 만드는 요인이었죠. 밥은 와이프에게 시차를 고려하지 않는 연락들을 받으며 힘들어하고, 샬롯은 남편에게 같이 있어달란 말을 하지만, 남편은 일이 먼저였죠.
호텔에서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샬롯의 제안으로 샬롯의 일본인 친구들의 파티에 함께 가게 됩니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낍니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 밥도 먹고, 술집도 가며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그들은 술을 마시고, TV쇼를 보며 낯선 도시에서 느꼈던 것들, 고민들을 나눕니다. 이 도시에서 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죠.
서로가 필요한 걸 알고 있으면서도 평생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 그들은 거리를 둡니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밥이 귀국하기 전날이 됩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 밤, 서로의 눈을 마음껏 바라봅니다.
떠나는 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던 밥은 샬롯의 뒷모습을 보고 택시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샬롯을 안아주고 입을 맞춘 뒤, 귓속말을 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밥, 샬롯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도쿄의 풍경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후기
한 점의 그림과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같은 그림에 대한 감상이 다르듯이,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그저 감상하고 느끼게 하기에, 많은 해석들이 나올 수 있다. 카메라의 시점도, 프레임 속의 주인공도, 영화의 분위기도 해석하기 나름인 영화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취향인 영화였다.
사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외로움을 핑계로 한 정신적 바람을 그린 영화다. 낯선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낀 두 남녀가 서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싱글인 두 남녀였다면 모를까.. 둘 다 기혼자에 한쪽은 자식도 있다니..
그럼에도 취향이었던 부분은 프레임 속에서 표현되는 미묘한 감정들과 행동들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대사가 많지 않다. 대사를 통해서는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없다. 그저 프레임 속 등장인물의 행동과 표정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저 분위기, 표정, 공간과 조명 등 다양한 방법들을 활용해 프레임 안에 주인공들의 감정을 그려낸다. 그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지만, 느끼게 함으로써, 몰입감을 더한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과, 화려한 풍경과는 대비되는 이방인 같은 그들의 모습, 프레임 속 혼자인 주인공들의 모습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말하는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프레임 속에 혼자가 아니다. 프레임 속 함께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깊은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그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밥이 샬롯에게 한 귓속말조차 무슨 내용인지 들리지 않는다. 그저 그 말을 전한 밥과, 그 말을 들은 샬롯의 표정과 행동으로 짐작할 뿐이다. 샬롯은 눈물을 흘렸고 밥은 아주 환하게 웃는다.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영화가 끝이 나기에, 그들의 감정도, 귓속말도 오랫동안 궁금해진다. 정말 여운이 길고 강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