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1.나같은 당신에게 건네는 100가지 이야기
우연히 태어나다
우리들의 '세상과의 접속개시(Login)'는 모두 필연적 우연이라고 본다. 남녀의 화학적 결합은 필연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어떤 사람으로 세상과 접속할 지는 거의 우연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거의' 라는 표현도 유전적 특성과 과학을 이용한 의도적 출생을 고려한 것인데, 이조차 확률의 범주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로 태어나는지는 온전히 우연이다. 언급하기 불편하지만 이 우연한 출생의 비밀 중 하나는 크고 작은 불평등이 전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불평등을 방어할 무기나 회피할 틈도 없이 우연히 태어나는 것이다.
우연(偶然)을 살다
우연히 태어난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온 필연(必然)들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풍족하든 부족하든 그 어떤 선택권도 없이, 먹여지고 입혀지고 씻겨지고 사랑을 받으며 우연을 살아간다. 우리보다 먼저 우연히 태어난 우리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을 거울삼아, 각자의 우연에 다양하고 애정 어린 색깔의 필연을 성심으로 입혀준다. 마치 우연히 태어났으니 더 이상 우연한 색깔을 입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사실 우연히 태어난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뭣 모르고 막사는 것이 근본이다. 벗겨진 몸이 전혀 창피하지 않으며, 배고프면 울고, 신호가 오면 그 자리에서 배설을 하면 그 뿐인 것이다. 물론, 다가올 스펙터클(spectacle)한 필연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이다. 동의하지 않지만, 필연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바보인 것이다.
필연(必然)을 강요받다
언급했듯이, 우연히 태어나 막살 수 있었던 우리는 무수한 필연들을 온 몸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누구나 직면할 일이다보니 체감이 약할 뿐, 절벽에서 강풍을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굶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잘 씻고 입어야 한다. 심지어 예쁘고 멋지게 입고 비싼 차도 타야 하는 것 같다. 그 뿐인가! 같은 사람인데 가려 만나야 하고, 사랑조차 필요충분조건이 늘어난다. 그리고 우리도 부모가 되어 부모가 했던 일까지 대물림 한다. 이렇게 우연히 시작한 우리들의 삶은 온갖 필연을 강요받고, 수많은 자격까지 요구받는 숙명적 굴레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을 살다 낭만을 쓰다
세상과 Login(접속개시)하면서도 나약하고 뭣 모르는 우리는, 스스로 보태거나 의견도 내지 않았던 이미 빼곡하게 들어찬 세상의 강력한 필연에 순종하면서, 우연의 대부분을 필연에 소비한다. 그 뿐인가? 이제 숨 좀 돌리겠다 싶으면, 처음부터 그림자처럼 대기 중이던 '죽음이라는 필연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공평(公平)을 선언하며, 우리들의 무대를 끝내버린다. 나는 나를 포함한 그런 우리들이 매우 안쓰럽다. 그럴 바엔, 우연히 태어났던 그 순수를 가능한대로 이 필연의 무대에 올리면 어떨까? 나는 이것을 '낭만'이라 부르고, 필연의 무대에 낭만을 마구 쓰고 싶다. 같이 낭만을 쓰고 싶다. 지독한 가난이나 욕심 많은 권력 때문에 낭만을 쓰기가 벅차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커튼콜’을 받고 말 것이다.
P.S.
한 명
두 명
세 명
세상과 우연히 접속(Login)되고,
또 한 명
또 두 명
또 세 명
필연의 무대 위에 낭만을 쓰다보면,
작게는 어둠을 밝혀주는 밤 별 같은 위안(慰安)으로
크게는 불필요했던 무수한 필연(必然)들의 소멸(消滅)로써
콘크리트 같은 불평등에게
심지어 필연의 우두머리인 죽음에게
조금은 담담(淡淡)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