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자따봉 Oct 20. 2023

4.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20201019


[트리거 주의] 본문에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읽음에 있어 주의를 권합니다.




전에 이야기했다싶이, 시험기간에 도저히 일을 병행할 수 없을 듯 싶어 쉬고 있다. 그 사이에 자잘한 일들이 있어서 써보려고 한다.

내가 단체 측에 보낸 자료는 완벽에 가까웠다고 한다. 경찰 신고를 진행하며 진술서를 쓰고 신고를 진행하면서 혹시나 내가 부족한 면이 있을까봐 스트레스 받고, 너무 걱정했었는데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가 보내주었고, 완전히 베태랑 급으로 진술서를 써줘서 감탄했다고 해주셨다. 진술서는 경찰 신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작성하며 스트레스를 꽤나 받는 작업이었다. 진술서 작성 과정에서 사이버수사대 페이지가 샘플로 제시하는 문장은 단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있기 때문에, 어떠한 틀도 없는 상태에서 진술서를 다시 써야한다. 흰 공백에 내가 알아서 형식을 만들고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내용들을 강조하며 쓰는 작업은 꽤나 스트레스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보고 겪은 일들이 많다보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끌어 모아서 썼는데, 다른 분들에게 예시로 보여드릴 만큼 완벽한 작업이었다고 해줘서 기뻤다.​


경찰에 신고를 진행하는 과정은 아무래도 개개인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단체에서 이제 경찰 신고는 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마음의 짐이 덜어진 한결 기분이라, 시험 끝나고 실제로 신고를 진행한다면 어떨지 기대가 된다. 단체 측에는 내가 블로그에 활동기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았고, 굉장히 인상깊게 내 글을 보셨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경찰신고 대신 활동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일기를 쓰는 일에 소홀해질까봐 걱정이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가해자들이 있었는데 단체 측에서도 꽤나 중한 사안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르게 신고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그 자료들 먼저 추합을 하셨는데, 내가 겪었던 충격과 놀라움이 온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로 다가왔다. 빠르게 가해자가 잡혀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기대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망감 또한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 참 슬프다.​


오늘은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신고한 건들에 대한 진술 작업이 필요하니 출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고, 나는 상황을 설명드렸다. 지인능욕을 주로 신고했다고 했는데, 지인능욕이 뭔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설명을 드렸다.

지인 능욕은 3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지인의 사진을 제보받아 아헤가오를 합성하는 것. 둘, 지인의 사진 위에 자위행위를 하고 사정을 하며, 그걸 영상으로 남기는 것. 셋, 지인의 사진을 제보받아 그 지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성희롱을 함께 게시하는 것. 이 세 종류 사이에서 디지털성폭력은 끔찍하게 창의적으로 교차하며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처벌은 성폭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디지털성폭력관련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들었는데, 디지털성폭력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아직 잘 모르는 부분도 있어서 확실하지 않다.

나에게 전화를 한 경찰은 늘 그렇듯, 굉장히 귀찮아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남경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성 분이셨고 이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셨다. 아동 성폭력 이야기를 할 때 다소 두서가 없어서, 그냥 하소연을 해도 되냐고 여쭈어보았는데 들어주셨다. 결국 울면서 간략하게 드린 나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집중해주시며, 얼마나 심각한 건인지 공감해주셔서 놀랐고 감동이었다. 우리나라 경찰들이 일을 한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어 이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찰에 진행한 신고는 중복 신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임시로 상담으로 한 것으로 변경해놓고 (구체적인 단어는 잘 모른다) 단체 차원에서 다시 신고하기로 했다. 내가 신고한 상황에 대해 빠르게 이해해주시고 방향성을 제시해줘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가해자가 빠르게 잡혀야할텐데, 부디 오늘 통화를 통해 내가 느낀 작은 안도감이 순간의 감정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 단 2장의 사진으로 2천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