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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20. 2023

[나가며]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잘 보지 못한다.

20231020

이 글을 발행해야겠다는 결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어떤 감정들은 결정으로 존재한다. 머리 속에서 부유하던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단단한 무언가로 남는다. 그런 무언가가 남았을 때 결국 나는 토해내고 마는데, 그것이 오늘이었다. 왜 이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토할 것 같았고, 그때 그 시간의 일들을 더 이상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디지털 모니터링을 하고 꼭 3년의 시간이 지났다. 트위터로 불렸던 SNS 플랫폼은 이제 ‘X’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신설되었으나 트위터는 수사협조를 해주지 않는 쪽으로 정책이 변화하였다. (이것은 트위터 DM 을 통해 성희롱을 겪은 나의 경험담임을 밝힌다.) 2020년 당시 모니터링을 함께 진행하던 사람들과는 연락하지 않으며, 몇 명의 가해자들은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1명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가해자를 특정해냈다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모니터링한 가해자의 숫자에 비해 처벌받은 사람들의 숫자는 한참 작다는 사실에 씁쓸해했던 것도 생각난다. 그때 모니터링의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찾아보고자 하였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은 이제 나에게는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잘 보지 못한다.


디지털 모니터링이 원인이 되었냐고 하면 아니다. 뉴스로부터 각종 아동성착취 영상에 대한 소식을 들려오던 시기에 길을 가다 어떤 아이의 맨다리가 보였다. 그 아이의 맨다리 주위로 글자들이 둥둥 떠다녔다. 만약 저 아이의 사진이 트위터에 게시되었다면 달렸을 법한 말들이 떠다녔다. 수 많은 아이들에게 행해졌을 가해의 언어들이 돌고 돌아 다시 나의 몸안에 잔류물이 된 것이다. 끔찍한 단어들이 보이는 나 자신이 말할 수 없게 역겨웠고, 그런 스스로가 역겨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들의 다리를 잘 보지 못한다. 이 말을 뱉는데에도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저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때 했던 모니터링 활동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끔찍한 폭력을 마주하고, 입 밖으로 뱉지도 못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을 마주하고 나는 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니터링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표현할 단어들이 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언젠가 그 날 내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적확한 이론과 단어들로 조립할 수있도록, 나는 미디어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다. 그 시절 보았던 사진들이 품고 있던 독성이 온전히 분해되어 피해자들이 일상을 되찾았길 바란다.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피해자들 또한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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