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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Nov 02. 2023

D+25 아무리 노력해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이 안 써진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또 글이 막혔다. 작가 활동을 꾸준하게 해온 사람들한테는 오늘 점심을 먹었다 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와중에 지긋지긋한 것은 글이 써지지 않았던 지난날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에 대한 글조차 글이 막혀서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글이 막힌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연재 형식으로 글을 쓰지 전까지는 '글이 막혔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글을 읽는 것만을 좋아했고, 주로 쓰는 글도 분석적인 글이었기 때문에 글이 막힐 일이 없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글쓰기는 벽돌 쌓기랑 같아. 개요를 짠 다음에 벽돌 쌓듯이 문단 별로 문장을 쌓아가면 돼'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히는 말인지, 이제야 지난날의 업보를 돌려받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일이라고 조언해 주곤 했었는데, 그동안 자신 있게 거짓말을 내뱉고 다닌 셈이 됐다. 글은 꼭 단단히 얽히고 성긴 실타래를 푸는 것과도 같아서, 한번 꼬리실을 찾기만 한다면 그 이후는 쉽다. 문제는 대체 어디에 생각의 꼬리가 있는지 보이지조차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꼬리실을 찾아내고자 아무리 머릿속 생각들을 쥐어짜도 도저히 시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시작조차 못하는 데, 무슨 글이 써지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서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작가가 된 것이다. 남의 글을 읽어보면 좀 글이 써질까 싶어 에세이를 읽어보기도 했다. 차라리 아예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괜찮아질까 싶어, 냅다 걸그룹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춰보기도 했다. 아니다, 집에서 작업하는 것이 문제인가 싶어 구석에 있는 동네 카페도 찾아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억지로라도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눌러도, 세 시간을 앉아있으면 겨우 한 문단을 써냈다. 그렇게  열심히 한문단을 써도, 그다음 문단부터는 또다시 글쓰기가 막힌 것은 물론이다.


그럴 때 한국인이라면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마침 동네에 전부터 눈독 들이던 칵테일 바가 있었다. 그냥 칵테일 바여도 좋았겠지만, 창가에 자리가 있어서 도로의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원래 가볍게 하이볼 한 잔만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꼭 위스키를 마셔야 하는 날이었다. 고민하다 잭 다니엘을 샷으로 주문했다. 위스키 특유의 나무 향과 타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았다. 


찬찬히 바람을 쐬며 술을 마셨다. 그때 무슨 글을 썼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기야 이제는 하도 글이 밀려서 무슨 일이 언제 발생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송이와의 일상을 연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매일 하루에 1개씩 글을 써서, 200일 동안의 글을 묶어서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기획했던 야심 찬 꿈이 얼마나 바스러지기 쉬운 일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한때 나의 발걸음을 둥둥 떠오르게 했던 꿈이 지금은 다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땅에 발에 맞닿아있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가진 두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칵테일 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처럼 혼자 작업하러 온 사람은 없었다. 옆 테이블에는 부산에서 놀러 온 것 같은 커플이 앉아있었고, 뒤에는 퇴근한 회사원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아이패드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글이 갑자기 잘 풀리기 시작했다는 유명 작가나 말할 법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차근차근 글자를 써 내려가야 했고, 위스키는 한 번에 털어마시기에는 무척 썼다. 입안에 한 모금을 담고, 천천히 굴리며 나무 향을 맡았다.


한 모금, 그리고 한 문장. 그렇게 조금씩 글을 썼다. 위스키만 있었다면 아마 글을 다 쓰기 전에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첫 잔으로 주문했던 얼그레이 하이볼이 무척 근사했던 덕분에, 샷잔에 담겨있는 위스키도 바닥을 비울 수가 있었다. 예전에는 위스키를 참 좋아했었는데,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까 맛을 해석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술이 좋아졌다. 예를 들면 하이볼, 혹은 모히또 같은 술 말이다. 비록 예전에 자주 가던 칵테일바 사장님이 모히또가 만들기에 손이 많이 간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지만, 일단 주문했다.


칵테일바는 차가 달리는 도로 바로 앞에 있어서, 가만히 창가에 앉아있으면 가을바람이 불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먼지바람에 가운데 있다는 것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무것도 안 해도 가슴이 간질간질하게 설레는 기분이 좋았다. 올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모아 전시회를 연다면, 그중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이럴 때는 진한 올드 재즈보다는 잔잔하지만 신난 - 놀랍게도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있는 말이다 - 팝송이 잘 어울린다. 흩날리는 바람에 삶의 먼지들을 날리고, 밤 11시가 되어 송이 밥을 주러 집에 들어갔다. 가게를 나오기 전에 가게 사장님에게 송이 자랑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나의 글을 읽으면서도 얘는 대체 직업이 뭘까 궁금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고양이 밥을 주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저녁쯤 돌아와서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는 삶, 그런 삶과 직장인이라는 단어는 근본부터 맞지 않다. 그렇다, 나의 직업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항상 일주일의 대부분은 베짱이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백수라고 정체화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사실 대학원 입시라는 게 특별히 준비할 것이 많지 않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인데, 어쩌다 보니 7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상반기 안에 잘 마쳤다.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시기를 놓쳐 하마터면 졸업마저 미룰 뻔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영어 성적이 필요한데, 이건 대한민국의 공장식 사교육에 맡기면 된다. 학원만 열심히 출석한다면 한두 달 만에 마법 같은 성적을 만들 수 있다. 아니, 원래 한 달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2주 만에 목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지원서 제출이다. 화요일이 제출 마감이었지만, 산뜻한 기분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싶어서 월요일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캠퍼스의 분위기도 느끼고 싶어서, 주변에 아는 졸업생 언니한테 야무지게 맛집 추천도 받고, 길을 떠났다. 그동안 꼭 합격하고 싶어서 지도 앱으로 학교 가는 길을 몇 번이고 찾아봤기에 너무 자신했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확신에 가득 찬 채로 엉뚱한 역을 향해 출발했고, 학교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가 되었다.


○○대학교 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는데,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학교 캠퍼스에 남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7년 동안 캠퍼스에서 남자를 볼 일이라고는 예비 범죄자 (숙명여대 캠퍼스 내에서 발생한 수많은 범죄 사건들을 찾아본다면 빠르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교직원 정도였다. 아마 모든 여성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여성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오는 인간은 멀쩡할 사람일 가능성보다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갑자기 새로운 장소에 떨어지게 되어 놀랐는데, 쉬지 않고 지나다니는 모르는 남자들을 보고 더 긴장이 됐다. 침대 밖을 아예 못 나가던 시절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길에 다니는 모르는 남성들의 존재는 편안하지 않다. 굳이 나를 알아보는 티를 내고 지나가는 남성들 - 나는 그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유튜브에서 '페미년'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를 자주 봤겠지 -로 인해 나의 공황장애는 치료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아예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공간,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건물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더듬더듬 표지판을 따라갔다. 아무렇지 않게 슥슥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비교되어, 얼어붙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는 더욱 눈에 띄었다. 그리고 송이가 생각이 났다. 이제는 네 다리 다 뻗고 자는 고양이가 됐지만, 처음 온 송이는 한참 동안 먼지가 가득한 옷장 구석에 숨어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이동장 내내 왕방울만한 눈동자로 숨죽이고 있다, 이동장 문이 열리자마자 옷장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뭐가 저렇게까지 무서웠을까, 싶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고양이로 태어난 송이가 지금까지 만난 인간은 전부 나쁜 사람이었다. 당장 꺼지라고 소리 지르던 사람,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발길질하던 사람, 그렇게 송이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도망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송이에게 사람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곳에 와보니 인간이 늘 옆에 있었다. 인간은 가만히 구석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거나, 아니면 이상한 쓴맛이 나는 참치를 놓고 가곤 했다. 다른 인간들처럼 뚜벅거리는 발걸음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은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조심스럽게 나와서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다른 곳을 살폈다. 비록 지금까지 만난 다른 인간처럼 때리려고 하거나 소리를 지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두려움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전기가 튀어 오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아, 나는 사람을 무서워하는구나.



그렇지만 송이와 나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끝나는 기적을 쓸 것이다. 송이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신호들을 역행하여, 사람 또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어디를 가던 뻔뻔한 모습으로 사랑만 받아야 하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송이에게 쉬지 않고 말해줄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고양이라고, 적어도 159cm 크기의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그렇다고. 너를 위해 새벽까지 핸드폰의 알람을 끄지 못했던 한 여성에게도, 한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며 가끔씩 눈을 들여다보던 아저씨에게도, 너는 귀하고 또 귀한 숨결을 품은 존재라는 것을 네가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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