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이들이 너무 귀하다. 저출생 0.6의 시대에서 아이들이 존재만으로도 귀한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너무나 귀하게 큰 나머지 모두가 한 가정의 공주님이자 왕자님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왕자로 크든지 거지로 크든지 상관이 없다. 문제는 우리 집의 왕자와 공주가 모였을 때 생긴다. 모두가 나에게 맞춰주고, 내 의견을 들어주고, 내 요구를 바로바로 충족시켜 주는 삶을 살다 보니 학교에서 자신의 욕구가 바로바로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때론 이를 거지가 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분을 되찾기 위해 난동을 피우기도 한다. 공주와 왕자가 아닌 자신의 위치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다. 구석기시대부터 포식자를 피해 무리생활을 시작했던 인류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2020년 우리를 강타한 코로나로 인해 이는 더욱 극명히 드러났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비대면으로 만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면 만남에 대한 갈망을 모두가 느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이 시기에 학교를 가지 못하는 고통을 느꼈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코로나로 2년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적응하고, 매일 학교에 오는 삶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는 높은 확률로 사회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사회의 체험판이기 때문이다. 이걸 견디지 못하면, 겪지 못하면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 사회는 더 이상 학교에서처럼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행동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있을 뿐이다.
소중한 내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그러나 모든 아이는 어른으로 자라서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평생토록 부모의 그늘 아래 있을 수는 없다. 아이를 한 명의 어른으로 키워내려면 가정에서는 경험시킬 수 없는 학교에서의 삶을 아이 스스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해야 할 행동과 태도, 생각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가정과 학교의 일관된 지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와 가정은 아이를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비합리적인 요구와 협박이 난무하고,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가정과 학교의 대립 속에서 아이는 결국 소외되고,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의 불신 속에 피해받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할 기회를 놓친 아이들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표류하고 있다. 아이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