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강타 Sep 04. 2024

그 여자 그녀 이야기

아들의 김밥

목요일 밤 11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오니 주방이 어수선하다. 밥을 먹은 흔적은 아닌데 뭔가 이것저것 늘어져있는 게 이상하다. 밥 먹었는지를 물어보니 내일 뭘 좀 만들려고 재료를 사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를 못했다고 했다.


그녀의 아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로 밖에서 밥 먹는 일이 많으니,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일주일에 많으면 세 번 아니면 두 번 정도이다. 그녀 또한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일이 많지 않다.


어쩌다 주말 집에 있는 날이면 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봄부터 잊어버릴 만하면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켰는데 양도 많고 비주얼 또한 비싼 값만큼이나 화려했다  둘이 먹고도 남을 양에 늘 불만이었지만 (몸에도 좋지 않은 아이스그림을 많이 먹는 것이 싫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시대 흐름에 반영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하니) 그냥 참아 넘긴다. 어느 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봐 왔다며 양손 가득 짐 보따리를 식탁에 내려놓기에 펼쳐보니 아이스크림 만들 재료들이 한가득이다. 몇 번 사 먹어 보니 너무 비싼 것 같아 재료를 사 왔다며 토요일에 만들어 먹자고 했다.

그 주 토요일

전날 사온 재료들을 모두 꺼내놓고 배달시켜 먹던 아이스크림처럼 만들어 보지만 똑같은 비주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좋은 재료들을 듬뿍 넣으니 맛은 더 좋았다.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이 문제가 아닌 모자가 얼마 만에 이렇게 같이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어본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들하고 아이스크림 만드는 과정이 좋기만 했다. 평상시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생활에서 같이 뭔가를 만들며 그간 소원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음식을 먹는 게 좋기만 했다.


지난 금요일에도 그랬다.

[아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한 번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퇴근 소식을 알린다. '오늘은 늦어요, 오늘은 저녁약속이 있어요, 오늘을 병원에 들려가서 늦어요, 오늘은 야근이에요.' 걱정할 그녀를 위한, 밖에서도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의도인걸 알기에 말은 안 하지만 고맙고 또 고맙다. 그녀 또한 자신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게 하고 다닐 것을 믿기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단지 표현을 안 할 뿐.]


퇴근 두 시간 전 카톡으로, 퇴근 후 집에 와 어제 사다 놓은 재료로 특별한 김밥을 만들 것이니 저녁 먹지 말고 기다리라 했다. (그녀는 소화 장애 문제로 적은 양의 식사를 하며 보통 6시 전에 식사를 한다.) 집에 온 아들은 어제 미리 손질해 둔 것이라며 조금 큰 반찬통에 다시마로 싸놓은 연어를 내오더니 제법 능숙하게 재료들을 척척 준비했다.

"요즘 날씨에 연어를 생으로 먹어도 될까 걱정되는데?"라고 물으니 소금으로 문질러 키친 타올로 정리한 후 다시마로 싸놓았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킨 후 김발에 마는 것만 도와달라 했다. 일본 유학시절 가끔 먹던 거였는데 우리나라 일식집 가서 먹으면 너무 비싸기도 하고 그녀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어 준비했노라 했다.


김 한 장 반을 붙이고 밥을 얇게 편 후 두껍게 썬 연어를 올리고, 알끈을 제거하고 체에 밭쳐 부드럽고 굵게 부친 계란말이를 넣고, 돌려깎기한 오이를 채쳐 절인 오이, 치즈, 아보카도, 단무지, 마요네즈에 버무린 맛살, 굵은 새우튀김을 넣고 굵게 말아 썬 후 고추냉이를 넣은 간장 베이스에 찍어 먹는 일본식 김밥(후토마키)을 만든 것이다.


매번 그녀가 김밥을 만들어 주기만 했지 아들의 만든(마는 것은 그녀가 말았지만) 그것도 처음 보는 김밥을 보니 아이스크림 만들 때 처럼 가슴이 따듯해짐을 느끼며 김밥에 맛도 배가 되었다. '역시 내가 아들은 잘 키웠어'를 속으로 생각하며 언젠가 또 다른 이벤트를 기대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