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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지마대학생 Mar 21. 2024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는 나와 함께 하는 법

나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까? # 테세우스의 배 # 물분자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어떤 배가 있는데, 너무 낡아서 부품들을 모조리 교체해야 한다.

첫날엔 닻을, 둘째 날엔 노를

이렇게 하나씩 배의 모든 부품을 교체했다.

분명 닻 하나를 교체했을 땐 원래 배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부품을 교체했을 때 이건 원래 배가 맞는 걸까?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바꾸고, 몸을 바꾸고, 성격을 바꾸고, 주변 사람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모든 부분을 바꿨을 때 그건 여전히 동일한 본인일까?


이를 간단한 계산으로 생각해 보자.

본인의 모든 부분의 집합을 A라고 하자. A = {성격, 외모, 지능, 인간관계,...}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A의 부분집합을 B라고 하자. B는 A에서 일부 요소만 가져온 것이다. 예를 들어 B = {성격, 외모}와 같이 놓을 수 있다.

새롭게 변한 요소들의 집합을 C라고 하자. C = {새로운 성격, 새로운 외모}와 같이 놓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격과 외모를 완전히 바꾸었다면 기존의 모습과 새롭게 변한 모습의 변화비는

C/(A-B)로 표현할 수 있다. 만약 A가 {성격, 외모, 지능 인간관계, 돈}로 5개의 요소로 구성되고, B가 {성격, 외모}로 2개의 요소를 가지고 C가 {새로운 성격, 새로운 외모}로 B와 마찬가지인 2개의 요소를 가진다고 했을 때 기존의 모습과 새로운 모습의 비는 2/3이다.

만약 이 비가 1을 넘게 되는 순간 기존의 본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무엇을 동일하다고 말하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동일함을 논했을 땐 하나뿐인 배, 하나뿐인 본인처럼 유일함의 관점으로 생각했다.

이제부턴 동일함을 기능적 동일함으로 생각하는 관점을 가져보자.


여기에 물이 있다. 정확히는 물분자가 있다.

과학에선 분자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물분자가 하나 있고 그 옆에 또 다른 물분자가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물분자라고 말을 하는가? 유일함의 측면에선 첫 번째 분자, 두 번째 분자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느냐는 관점에선 두 분자는 동일하다. 물의 성질을 가지는 최소단위로써 물분자란 온도가 낮아지면 수소결합에 의해 얼음결정이 만들어지고,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진동을 하여 온도가 올라가고, 비교적 높은 비열 때문에 밤에는 바닷물이 공기보다 더 따뜻하다. 이런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입장에선 두 물분자는 동일하다.


우리는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기존의 것이 완전히 없어지고 새로운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미래의 나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나로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기억은 지금도, 미래에도 어느 정도는 동일하고 나의 성격의 아주 밑바탕도 예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는 동일하다. 외모는 물론이고 선호하는 인간관계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즉,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완전히 없어지고 새롭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옛 모습 대신 새로운 모습을 더 선호하고 자주 사용할 뿐 예전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사람은 불에 타 없어지는 종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책장에 하나씩 추가되는 책과 같은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해 보자.

기존의 모습과 새로운 모습의 비 대신

나의 모든 모습과 새로운 모습의 비로 바꾸어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C/(A-B)가 아니라 C/(A+C)이다.

식을 해석하면, {새로운 성격, 새로운 외모}/{기존 성격, 기존 외모, 기존 돈, 기존 인간관계, 기존 지능, 새로운 성격, 새로운 외모} 이런 식으로 기존의 모습은 유지한 채로 새로운 모습이 추가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모습을 무척이나 많이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1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그 말은 나의 모습을 넘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도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만 같다.

언제나 나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존재의 안정성을 제공해 주는 한편, 본인을 완전히 싹 갈아엎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점에선 존재의 불만족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이 됐든 명심해야 할 점은, 언제나 본인은 본인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겠으나 본인과 잘 지내는 편이 남은 인생을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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