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을 피곤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지난달에 가족과 바람도 쐬고 드라이브도 갈 겸 뮤지엄 산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수년간 지인들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진 몇 장 말고는 뮤지엄 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돌로 만들어진 뮤지엄이고, 카페에서의 경치가 좋은 그런 곳? 딱 이 정도였다. 보통 뮤지엄에서는 사진을 못 찍는 곳이 많기에 사진기도 두고 갈려다 혹시 몰라 가져가봤다. 아.. 안 가져갔으면 정말 너무나 후회할 뻔했다.
우선 나는 미술이나 건축에 대해 상당히 상대적으로 흥미를 느끼지만 조예가 결코 깊지 않다. 그날 뮤지엄 산으로의 여정은 나의 예술적 게이지를 충전시키는 게 아닌 점점 바빠지는 요즘 가족과 함께 하루만이라도 살짝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장소에서 잡음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온전한 목적이었다.
미술이나 건축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다고 관심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웰컴센터에 도착하고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흥미로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도 뮤지엄 전체를 돌아보는데 약 2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 '되게 크고, 넓고, 개방적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웰컴센터가 건네는 느낌은 뭔가 숨기듯 좁은 통로와 어둠이었다. 설레기 시작했다. '아 이 건축물이 방문자들과 밀당하기 시작했구나.'
내 느낌이 맞아떨어졌다. 듣자 하니 뮤지엄 산은 총 6개의 공간으로 나뉘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6개의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없다. 공간 사이사이의 통로는 개방적이지 않고 마치 미로를 따라가듯 좁은 시야로 이어진다. 참 속 터지는 듯 세련단 밀어내기다. 그리고 공간의 차이를 주변 환경 요소의 차이(예. 어두운 내부에서 잔디에서 물로)로 알려주는 다른 차원의 세련된 당김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이 완전히 다른 느낌인가? 그것도 아니다. 기저는 '미니멀함, ' '모던함, ' '그레이, ' '차가우면서 따스함'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공통적 테마('미니멀함, ' '모던함, ' '그레이, ' '차가우면서 따스함')가 있어도 2시간 공간과의 밀당(혹은 계속 조금씩 느껴지는 공간의 변화)을 하면 어지럽거나 머리가 하얘질 수 있다. 마치 여러 가지 다른 일은 해내고 퇴근하면 정신이 없듯이. 하지만 뮤지엄 산은 밀당을 아주 적절히 진행했다. 계속되는 그레이톤의 바닥과 시멘트의 벽이 모던함이라는 공통 테마를 끊임없이 알려주며 나에게 색감적으로 살짝 차갑지만 안정감을 주었고, 새로운 공간이 나올 때마다 빛의 투과성, 자연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다르게 보여줄지를 적절히 조절하며 내 눈을 호강시켰다.
뮤지엄 산을 다 돌아봤을쯤 내가 느낀 것은 어지러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피곤하거나 지치는 스타일이 있고, 반대로 에너지를 얻어 더 힘이 솟는 스타일이 있다. 뮤지엄 산의 다양하며 적당한 공간 밀당은 매 순간 내게 에너지를 주입시켰다. 바람 쐬러 나온 가족 드라이브가 단순한 힐링을 넘어 에너지 충전까지 이어진 이 방문은 예상치 못한 행복을 선사했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 모두가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였다.
무슨 일을 하든 매일 하루하루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전날과 다음날의 루틴은 미묘한 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동일하며, 그 동일함에서 우리는 피곤함을 느낀다. 웃긴 점은 일상에서 갑자기 다른 환경에 노출되거나,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자리에 있다 돌아오는 것은 또 꺼려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일상의 루틴이 익숙하고 편해졌으니까. 다만, 가끔씩은 새로운 환경에 발을 담가보거나 변화하는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나의 몸과 시간과 마음을 맡겨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날 때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똑같은 일상에서 다른 점이나 변화를 포착하여 온전히 느끼며 다음날의 기대감을 올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능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