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철 교수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 ④
[특별기고]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④
“이제는 수난 애도를 넘어, 제주 민중이 품었던 항쟁·혁명까지 상상하자”
-2024년 10월 10일 <제주의 소리>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한강. 그가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는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제주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4.3을 널리 알리는 의미에서는 반가운 창작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4.3을 수난사 중심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적인 입장도 나온다.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고명철의 분석이 그러하다. [제주의소리]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고명철 평론가의 평론을 연재한다. 4.3 문학, 나아가 4.3 예술이 더 높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평론은 반년 간 ‘지구적 세계문학’(2024년 상반기호)에 발표된 글이다. [편집자 주]
4. 세계문학으로서 ‘4.3항쟁/혁명’의 정치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는 한강의 문학적 성취에 흠결을 내기 위한 게 결코 아니다. 그보다 이 작품에 대한 유럽 문학계의 상찬 일변도의 평가들이 소홀히 여겼거나 둔감했거나 아예 관심 밖이었던 비평적 사안을 비판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관성적으로 내밀히 착근한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을 아울러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다.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사 골격인 4.3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그것의 소설적 형상화가 비중 있게 다뤄진 만큼 해당 작품이 유럽의 유수 문학상을 수상한 터에, 4.3사건의 문학적 접근이 세계문학으로서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비평적 논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모색하는 데 유의미한 논쟁적 쟁점을 제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서 드러나듯, 한강의 소설 쓰기에서 우선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4.3사건에 대한 넓고 깊은 공부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4.3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 성과는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4.3문화예술운동에서 축적시키고 벼려온 4.3문학의 성취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비판적 해석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으로 복권된 4.3사건이 수난사 중심으로 제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문학이 기존 4.3문학의 성취를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지, 그 문학적 진실을 작가의 창조적 분투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그래서 수난사 중심의 제도권화된 4.3사건의 전모를 작가는 어떤 래디컬한 시각으로 웅숭깊게 자신의 언어와 미학으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서사적 쟁투를 펼쳐야 한다. 이것은 ‘작별하지 않는다’처럼 4.3사건에 대한 ‘애도의 서사’를 한강 특유의 소설 쓰기로 진력하되, 수난(자)에 대한 ‘재현의 윤리’에 자족하는 것을 넘어 ‘재현의 정치’를 포함한, 보다 높은 차원의 미학적 정치윤리의 감응력을 지닌 ‘애도의 서사’를 전개했으면 하는 비평의 욕망에 기인한다.
이것은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을 향한 인정투쟁의 문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프랑스어 번역작 출간 전후와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 수상 직후 한강과 해당 작품의 상찬에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들이 해당 작품에 각별히 주목한 것은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그들이 자행한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의 대참상이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고립된 제주 섬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조우했던 제국과 근대 국민국가의 폭력에서 야기한 반인권적 야만과 포개지는 끔찍한 역사의 비극적 한 사례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그들 문학에서 최선은 유럽 문학(제도)이 발전시킨 ‘애도의 서사’의 문학적 이념과 미학에 대한 아시아 작가의 그것이 얼마나 참신하고 밀도 있는 개성적 서사로 그들의 문학상 결정에 적합한 ‘물건’으로서 자족하는가의 문제다. 여기서 그들에게 각별히 눈에 들어온 것은 ‘눈‒폭설’과 연관한 이미지와 시적 산문이 자아내는 서사의 매혹이다.
이와 관련하여, 4.3사건에 대한 문학적 접근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게 있다. 4.3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옛 소련 중심의 글로벌 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변경 제주에서 민중이 봉기한 세계사적 사건의 성격을 띤 민중항쟁이면서 혁명적 성격을 띤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으로 인한 제주 민중의 무고한 희생, 즉 수난사 중심으로만 4.3사건을 접근하는 것은 역사의 일면적 진실일 뿐, 4.3사건의 안팎을 에워싼 총체적 접근을 결여한 것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향한 비판적 지점은 이것에 적중(的中)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말하자면, 4.3사건이 함의한 세계사적 면모를 한강은 살피지 못한 한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을 몰각한 유럽 문학계의 지극히 유럽 중심의 세계사적 인식의 민낯도 동시에 드러난 셈이다. 따라서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은 무엇을 그리고 어떠한 문학적 실천으로, 즉 작가로서 창작은 물론 비평가로서 비평을 담대히 적극 수행해야 할까.
이 글을 맺으면서, ‘작별하지 않는다’의 작중인물 ‘인선’의 엄마가 나지막이 읊조린 대사—“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95쪽; 이를 표준어로 옮기면 “눈만 오면 내가, 그 생각이 나는구나.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나.”) “꼭 생시 같은 꿈”(104쪽)—에 배여든 제주 민중의 수난과 그 애도에 자족하는 것을 넘어 제주 민중이 소중히 품었던 ‘4.3항쟁/혁명’의 정치적 상상력의 나래를 새로운 세계문학의 높은 차원에서 펼치길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4.3의 전 지구적 쟁점과 그 세계(문학)적 진보의 가치를 위해 수난사 중심의 ‘애도의 서사’에 갇힌 4.3과 작별하자! [끝]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