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Dec 31. 2024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글: 나이젤 워버튼 [뉴필로소퍼 6호 Article]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기껏해야 아주 가끔 최상의 시나리오에 기반해서 남은 시간을 계산해볼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지금 내 나이는 56세. 앞으로 보통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0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만 70세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80대 초반에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시간이 예상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     


책을 쓰는 일 등 인생의 어떤 과업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롯이 집중한다고 해도 1년 이상은 걸리며, 일반적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책을 쓸 수 있다 해도 그 권수는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의 인생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고, 그들이 삶의 각 단계를 지나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중년이 된 자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내가 원하는 만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또한 불가능하다. 이미 그들 중 몇 명은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이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 또한 진부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열 살 때 창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비가 오는 일요일 오후는 유난히 더디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느낌은 거짓이 아니었다.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시골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할 일이 없어질 때마다 얼마나 강렬한 회색빛 지루함이 찾아왔는지, 요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반면 23년 전 첫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인생은 자각하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어찌 보면 어린 시절의 일요일 몇 번보다 더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철학자들은 인생이 짧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속성이라고 주장해 왔다. 만약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떤 일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이 지루함과 무의미함의 늪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렴풋이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에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몇 년만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인생이 짧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것을 낭비하는 데 있다
ㅡ세네카     


시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또 하나의 주범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이 기계 덕분에 언제든 어디서든 인터넷 창을 띄워 메일 확인 등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마트폰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장점은 언제나 (혹은 상당히 자주) 단점만 못하다. 멀티태스킹의 과도한 인지적 비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고도의 디지털 숙련도를 지닌, 아무런 부담 없이 검색과 의사소통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일부 사람들뿐이다. 그 집단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인 나는 SNS의 인간관계를 통해 창출된 새로운 기회에 감사하면서도,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 온라인상에서 보낸 시간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르는 메시지와 알림 창을 들여다보며 지낸다. 이미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이따금 내게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종종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고 두 시간 내내 기타를 쳐댄다. 어떤 날은 종일 카페에 앉아 몽상을 하고, 또 어떤 날은 서점에 가서 지금 하는 일과 아무 상관 없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내가 진작 끝냈어야 했던 일들은 여전히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찾아온다.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이 평소보다 덜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이젤 워버튼(Nigel Warburton)

《뉴필로소퍼》 편집위원·철학자. 《생각하는 삶을 위한 철학의 역사》, 《모든 것에 대한 생각》, 《스무 권의 철학》 등의 저서를 통해 “가장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현대 철학자”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영국 개방대학교와 노팅엄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팟캐스트 <필로소피 바이츠>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Nigel Warburton (born 1962) is a British philosopher. He is best known as a populariser of philosophy, having written a number of books in the genre, but he has also written academic works in aesthetics and applied ethics.     


Warburton received a BA from the University of Bristol and a PhD from Darwin College, Cambridge, and was a lecturer at the University of Nottingham before joining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at the Open University in 1994. In May 2013, he resigned from the position of Senior Lecturer at the Open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a number of introductory Philosophy books, including the bestselling Philosophy: The Basics (4th ed.), Philosophy: The Classics (4th ed.), and Thinking from A to Z (3rd ed.); he also edited Philosophy: Basic Readings (2nd ed.) and was the co-author of Reading Political Philosophy: Machiavelli to Mill. He has written extensively about photography, particularly about Bill Brandt, and wrote a biography of the modernist architect Ernő Goldfinger. He writes a weekly column "Everyday Philosophy" for The New European newspaper.     


He runs a philosophy weblog Virtual Philosopher and with David Edmonds regularly podcasts interviews with top philosophers on a range of subjects at Philosophy Bites. He also podcasts chapters from his book Philosophy: The Classics. He has written for the Guardian newspaper. He is the Philosophy Editor for the literary website FiveBook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