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이젤 워버튼, 뉴필로소퍼 6호 Article
가장 중요한 사후 세계는
죽은 후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2019년 초, M이라 불리던 한 철학자가 남은 삶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는 여러 달 동안 병이 깊은 상태였고, 예후도 좋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더 나쁜 상황은 그가 점점 우울해졌고,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으며, 평생 열정적으로 즐겼던 재즈도 더는 들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취미 삼아 외국 소설을 원서로 읽고, 철학서와 논문을 탐독하던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아는 친구들로서는 M이 철학책을 읽지 못하고 재즈를 듣지도 못하며, 철학이나 재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M은 점잖고 겸손했으며, 사교적이고 관대했고, 많은 이에게 재치 있는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아직도 나는 농담에 낄낄대던 그의 웃음소리를,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던, 좋아하던 재즈곡을 집중해서 듣던, 집필하고 있는 책의 주제인 논리적 오류를 즐겁게 설명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가정생활에도 충실했던 그는 가족으로 아내와 아들, 손주들이 있었다. 하지만 말년에 그는 ‘자기 모습’을 형성하던 수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 때문에 그저 살아있기 위해 점점 악화되는 삶을 연장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M은 무신론자이자 인문주의자였고, (사후 육체를 떠나는 비물질적 영혼 같은 것은 없는 복잡한 존재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유물론자였으므로, 목숨을 끊으면 상상 속 사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또한,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삶의 기쁨이 공허한 것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존재하기만 해도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도 믿지 않았다. 그는 사는 동안에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고 나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으므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 생각을 지지했다.
7세기 말~8세기 초에 활동한 영국의 역사가이자 신학자인 성(聖) 베다의 책에는 앵글로색슨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구절이 있는데, 한 사람의 삶을 참새가 연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틈을 고속 비행하는 모습에 비유했다. 새는 한쪽 문으로 들어와서 홀을 가로질러 반대편 문으로 나간다.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가 홀 안으로 들어오기 전과 홀 밖으로 나간 후에 그 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베다의 비유는 우리의 삶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우리의 무지, 특히 우리가 죽은 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데이비드 흄을 흠모했던 M은 증명 가능한 것으로만 우리 믿음을 조절해야 할 필요성과 사후 세계가 있을 가능성을 철저히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M은 죽음이란 꿈을 꾸지 않는 (그리고 꿈꾸는 사람도 없는) 잠과 같은 것이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을 수많은 증거들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새로운 세계는 마치 참새가 모든 필요를 채우면서 영원히 행복하게 날아다니는 연회장처럼, 육체에서 분리된 모습을 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새로운 손님들과 파티를 벌이는 곳이다. 무지의 종류에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와 그저 100퍼센트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 흄에 정통한 M이 보기에,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돼지가 영원히 나올 수 없듯이, 어떤 형태로든 사후 세계가 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M은 사후 세계가 있을 가능성이 몹시 적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희박해서 보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돈을 걸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대로 하면, 사후 세계는 흄과 마찬가지로 M에게도 ‘유효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어떤 주제에 관한 누군가의 믿음의 깊이를 측정하려면 그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는, 그가 어떻게 ‘실제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좋다. 일례로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어야 하고, 혼자 할 수 없을 때는 조력자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한다고 해보자. 철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일은 그 입장대로 행하는 것, 특히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없을 때, 그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과 다르다. M은 개인의 자유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고통이 심해져 통제력을 잃게 되리라는 합리적 판단이 설 때는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도움을 받을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능이 저하하는 상태와 죽음으로 직결되는 고통 완화 치료를 병행하는 쪽을 택한다.
병이 말기가 되자 M은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싶지 않았고, 자살 시도에 실패해서 가족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영국에 살았는데, 고통 없이 신속하고 편안하게, 확실히 죽을 수 있도록 믿을 만한 조력자를 찾으려면 큰 비용을 들여 스위스로 가야 했다. 사회의식이 발달한 M은 자기처럼 비교적 부유한 은퇴 교수는 스위스로 가서 조력 자살로 삶을 마감할 여력이 있지만,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달에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알면서도 돈이 없어서 그런 방식을 선택할 수 없음을 대단히 불공평하게 여겼다.
영국에서 자살은 불법이 아니지만, 자살을 돕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는 병이 깊어져서 여행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는 싫었다. M은 마지막 여행을 떠났고,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기로 했다. 그날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날임을 밝힌 다음, 두 가지 약물을 들이켰다. 첫 잔은 구토 방지제였고, 다음 잔은 (어쩐지 철학자에게 어울릴 것 같은) 독미나리와 같은 효과를 내는 약물에 쓴맛을 없애는 초콜릿을 첨가한 음료였다. 순식간에 그는 의식을 잃었고, 이내 사망했다. 우리 모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살 가망이 거의 없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쇠약해져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은 불치병 환자에게 조력 자살이 하나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이런 죽음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므로, 우리는 그런 행동을 안타깝게 여기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
몽테뉴는 철학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지를 배우는 것이라고 썼다. 나는 이렇게 보태고 싶다. 철학한다는 것은 ‘언제’ 죽을지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젤 워버튼)
《뉴필로소퍼》 편집위원·철학자. 《생각하는 삶을 위한 철학의 역사》, 《모든 것에 대한 생각》, 《스무 권의 철학》 등의 저서를 통해 “가장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현대 철학자”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영국 개방대학교와 노팅엄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팟캐스트 <필로소피 바이츠>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Nigel Warburton (born 1962) is a British philosopher. He is best known as a populariser of philosophy, having written a number of books in the genre, but he has also written academic works in aesthetics and applied ethics.
Warburton received a BA from the University of Bristol and a PhD from Darwin College, Cambridge, and was a lecturer at the University of Nottingham before joining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at the Open University in 1994. In May 2013, he resigned from the position of Senior Lecturer at the Open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a number of introductory Philosophy books, including the bestselling Philosophy: The Basics (4th ed.), Philosophy: The Classics (4th ed.), and Thinking from A to Z (3rd ed.); he also edited Philosophy: Basic Readings (2nd ed.) and was the co-author of Reading Political Philosophy: Machiavelli to Mill. He has written extensively about photography, particularly about Bill Brandt, and wrote a biography of the modernist architect Ernő Goldfinger. He writes a weekly column "Everyday Philosophy" for The New European newspaper.
He runs a philosophy weblog Virtual Philosopher and with David Edmonds regularly podcasts interviews with top philosophers on a range of subjects at Philosophy Bites. He also podcasts chapters from his book Philosophy: The Classics. He has written for the Guardian newspaper. He is the Philosophy Editor for the literary website Five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