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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좋아했지......

by 안나 아흐마토바

by 김양훈

그는 좋아했지......

안나 아흐마토바


그는 세상에서 세 가지를 좋아했지

저녁의 찬송, 흰 공작들,

그리고 낡은 미국 지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이가 우는 것, 딸기를 넣은 차

그리고 여자의 히스테리.

...... 그런데 나는 그의 아내였네.


[詩評]

니콜라이 구밀료프와의 결혼 생활 연관성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 「그는 좋아했지…」는 그녀의 첫 남편 니콜라이 구밀료프(Nikolai Gumilyov)와의 부부 생활에서 겪은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러시아 문단의 대표적 아크메이즘 시인으로 당대의 소문난 ‘문학적 커플’이었으나, 실제 결혼 생활은 극심한 성격 대립과 소통 부재로 갈등관계가 지속되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정서적 단절과 두 사람 간의 비대칭성적인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밀료프는 영웅적 기질과 모험심, 고결한 미학적 이상을 추구한 시인이었다. 그는 전쟁에 여러 번 자원하여 참전했고, 탐험과 여행을 사랑했으며, 소소한 현실 생활이나 가정적 안정보다는 위험과 이상, 예술적 명예를 향한 열정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 위 시 속에서 그가 좋아했던 것—“저녁의 찬송, 흰 공작들, 낡은 미국 지도”—는 구밀료프의 삶의 태도와 지향(指向)으로 연결된다. 종교적 장엄함, 희귀하고 고귀한 미감, 그리고 먼 세계에 대한 열렬한 동경은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다. 이는 현실과 감정보다 숭고한 이상과 일상을 벗어난 세계를 우선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Gumilev during his senior years in gymnasium

반면, 시에서 보여준 그가 싫어하는 것들—“아이가 우는 것, 딸기를. 넣은 차, 여자의 히스테리”—는 아흐마토바가 결혼생할에서 경험한 사적 감정의 외면과 무시, 애정 없음을 암시한다. 두 사람은 아들 레프를 두었지만, 구밀료프는 가정에 머무르기보다 전쟁의 참전과 문학 동네의 친교에 빠져 있었고, 아흐마토바는 남편의 그런 세계에서 점점 소외되었다. 그는 가족 공동체가 갖는 다정함을 부담스럽게 여겼고, 아흐마토바의 시적 세계를 지나치게 개인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 시에 묘사된 ‘현실의 세계를 거부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엿보인다.

마지막 행 “…… 그런데 나는 그의 아내였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의 선언일 뿐 아니라, 냉혹한 사랑의 단절을 깨닫는 순간에 새어나운 절규로 들린다. 아크메이즘적인 절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이 말은, 구밀료프가 사랑했던 세계 속에 아흐마토바 자신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그녀는 그의 세계에서 부재한 존재, 선택되지 않은 감정의 영역이었다.

구밀료프는 이후 반혁명 혐의로 처형되었고, 그의 죽음은 아흐마토바에게 평생의 상처인 죄책감을 남겼다. 이 시의 절제된 슬픔은 부부 갈등을 넘어 사랑의 잔혹한 비대칭과 잃어버린 애정의 비애를 증언하고 있다.

구밀료프와 아들 레프 그리고 아흐마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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