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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시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 치유

1인칭 시점에서 전개하는 예수 스토리

깨달음이 없다는 것,

 이는 믿음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깨달음 이전에

 믿음이 선행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믿으면,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즉 믿으면,

 이성적 깨달음과 이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길을 더듬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서로 꼭 잡고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이 나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나를 따라오고 있는가?

이들은 시각(視覚)이나

촉각(触覚)이 아니라

오직 청각(聴覚)에 의해서

자신이 나아갈 바를 결정한 듯하다.     


아마 나의 대한 소문(所聞)을 들었고,

 가까운 곳에 내가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이들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을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조용히 하세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아요”라고

 말릴 정도라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놀라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감동적이고 논리적인 강의를 해도

 믿기는커녕 나를 고소하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도,

 또 다른 표적을 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인가?

항상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리” 뿐이다.


아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말”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나를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친다.    

 

나는 못들을 척하고

 여느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대단히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들이다.

나는 질문을 했다.

 “내가 그대의 눈을 밝힐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까?”

이들은 이구동성(異口同声)으로 대답한다

 “주여 믿습니다.”     


이들은 보지도 않고, 믿는다.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의 문을 만졌다.

 “그대들의 믿음대로 될 것이요.”


이들의 시력이 회복되었다.

이제 어둠에서 벗어가

 빛의 세상을 살게 된다.

이들은 처음보는 세상을 보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부탁했다.

 아주 강하게 경고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그대들의 눈을

치유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이들은 집을 나갔다.

과연 이들이 내 말을 따라

조용히 다녔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대문 바깥을 나가는 순간부터

 더 큰 소리가 들린다.


"친구야 우리가 눈을 떴어.

그분이 우리의 눈을 고쳐주셨어. 와우..”     


이들은 내가 경고한 말을

 이미 깨끗이 잊은 것 같다.    

 

이들이 집을 나가면서 크게 떠드는 순간,

 누군가 한 사람을 데리고 온다.


말을 할 수 없는 언어장애인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귀신들려서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귀뜸을 해준다.


악한 영이

 이 사람의 “자기를 표현할 권리”까지

 방해하는구나.

배고파도 배고프다고 말할 수 없고,

 아파도 아프다고 절규할 수 없는 인생.

고마워도 고맙다고 할 수 없고,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는 딱한 인생.


나는 즉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온전케 하였다.     

"그대여. 이제 자유하시오.”    

 

치유가 끝나자 마자

 바리새인들은 또 비난한다.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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