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cey J Jan 09. 2024

Living small  

간결하고 단순한 삶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뮤지션 루시드폴이 몇 년 전 출간한 앨범 제목을 늘 좋아했다. 도시에서의 삶을 떠나 제주도에서 귤농사를 지으며 꾸준히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음악과 글도 좋아한다. 나는 뮤지션도 아니고 농사도 짓지 않지만 도시와 사람들의 번잡함을 떠나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단순해 보이는 생활에서 발견하는 모든 삶의 크고 작음과 살아있음 그 자체의 에너지에 늘 감탄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그의 창작물에 녹아있는 세상을 보는 시선에 크게 공감하곤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고 스쳐지나갈 흙더미 속, 고목 나무 저 높은 가지에도 치열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소소하고 평범한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과 영감을 얹는 일도 허다하다.



지금 사는 집의 바로 이웃에 괴짜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그가 사는 집은 무척 낡고 커다란 하얀 목조 건물로 일반 가정집의 외관과는 사뭇 다르다. 창문이 많은 이층집은 페인트가 벗겨진데다 현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에 빼곡하게 온갖 기물, 나무 토막, 깃발, 사다리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커튼이 없는 창문 사이로 살짝 보이는 실내에도 물건들이 가득차 있다. 그의 집 뒷마당에는 나무와 풀, 담쟁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고물상같은 이층으로 된 작은 헛간이 보인다. 군데 군데 유리로 되어 있는 헛간에는 불빛이 들어오는 독특한 원모양의 알록달록한 조명, 수리가 필요한 듯한 가구들, 고철들이 쌓여 있다.

하얀색 픽업 트럭과 오래된 차 두 대, 작동이 되지 않을 듯한 농기구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뒷마당 너머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지막한 언덕이 이어지는 평원은 사슴들의 쉼터로 하루에도 여러 번 사슴 무리가 와서 옹기종기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목가적이고 고즈넉한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바로 이웃인 할아버지 집의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혹시 위험하거나 유별난 사람이면 어떻하지?

그 생각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어선지 나중에 집의 전주인을 만난 날 "혹시 이웃분들은 어떤가요?" 라고 묻게 되었다. 멀끔한 인상의 젊은 부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솔직히 별다른 교류가 없었어요."

구멍이 뚫린 허름하고 낡은 면 티셔츠에 작업복 면바지, 투박한 신발을 신고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 집 주변을 배회하는 그의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왠지 위험하거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여러 명의 바이어들이 오퍼를 넣었으나 무슨 인연인지 나의 오퍼가 수락되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들뜬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처음 이 집을 방문한 날이 떠올랐다. 말과 당나귀, 젖소가 보이는 농장들이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들 사이를 달리고 달리자 뻥 뚫린 지평선과 푸른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낮고 구불구불한 일차선 도로를 따라 들어오니 운동장 1/4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 뒷마당이 딸린 파란색 이층 집이 있었다. 뒷마당이 끝나는 지점에 (할아버지 집과 맞닿은 곳) 하얗게 칠해진 목재 널빤지로 지어진 오두막이 오도카니 서 있었다. 하얀 펜스가 둘러싼 뒷마당과 오두막 너머로 끝없는 평원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석양이 물들이고 있었다.




1900년대에 지어진 이층집, 부엌과 화장실 빼고는 레노베이션되지 않아 아주 오래된 하드우드 바닥, 창틀, 나무 문, 기둥과 계단이 보존되어 있다. 당연히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고 하드우드 패널들 사이의 틈이 벌어진 곳도 많았다. 역시 우드로 된 창문틀은 매끄럽게 샌딩처리가 되지 않은 오래된 목재 그대로의 상태라 나무의 결이 살아있었다. 다이닝룸에는 붙박이 체리우드 캐비넷이 있었는데 유리로 된 문을 열면 수납을 할 수 있는 그릇장으로 쓰는 용도이다.



이 집에서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떨까?



외국에 오래 살며 여러 형태의 집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오래되고 유니크한 집은 처음이었다. 크고 멋진 집들이 모여 있는 교외의 안전한 커뮤니티를 떠나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 시골 동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볼 수 있을까? 예전에 살던 집의 1/3 크기로 줄어드는 공간만큼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가지고 올 것이었다. 그저 간결하고 단순한 일상 속에서 매일 해가 뜨고 지는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몇 달 후 이삿짐이 들어왔다. 그 전에 기본적인 수리와 페인트칠도 여러 날 진행되었다.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 수없이 집을 드나들면서 뒷뜰에서 모자를 쓰고 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여러 번 보았지만 눈 인사라도 건네고픈 나의 바램과는 다르게 그는 사람의 기척이 들려도 하던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새로운 이웃이란 존재가 번거로운지도 모른다.

나의 집 그리고 나와 같은 하늘을 공유하는 이웃들, 할아버지의 집 너머 오늘의 해가 뜨고 지고 또 뜨고 지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낯설었던 침실이 이제는 당연한 듯 익숙해질 무렵 펜스 너머 할아버지의 집 쪽으로 넘어간 공들이 (나는 대형견 푸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집 마당 쪽으로 나란히 되돌아와 있곤 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나자 할아버지의 뒤뜰에 서식하는 고양이 가족들이 우리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느 햇살 좋은 날이었다. 뒷마당에서 개와 공놀이를 하는데 펜스 너머 할아버지와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온 사람이에요. 고양이들이 참 귀엽네요."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건넨 인사에 할아버지는 어색한 듯 모자 아래로 시선을 피했지만 어쩐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소유의 고양이들은 아니지만 매일 찾아오는 탓에 밥을 주기 시작했을 뿐이야."



"내 소유는 아니지만....."

다소 특이한 그의 표현에 대해 떠오르는 무언가를 찾으려던 찰나, 덩치만 크고 하는 행동은 어린 강아지같은 (내 소유의) 개가 할아버지가 서 있는 쪽의 펜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를 향해 꼬리를 치고 컹컹 짖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개를 보고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펜스 사이로 손을 내밀어 개에게 인사를 하는 그의 주름진 얼굴은 가까이서 보니 밀랍인형처럼 희고 맑았다.


"개가 짖는 소리가 시끄러우시죠? 죄송해요."

"괜찮아. 개들이란 원래 짖는 법인걸."


저 쪽으로 개에게 공을 던져주면서 펜스 너머 서 있는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었다.


"고양이가 몇 마리 오나요?"

"너댓 마리, 더 올 때도 있어."


"저도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데 먹이를 주어도 괜찮나요?"

"물론이야. 마음대로 해. 내 소유의 고양이가 아니니까."


짧은 대화를 통해서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다른 시대에서 온 사람 같기도 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가족은 몇 명인가요?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처음 만나 나누는 형식적인 대화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느껴졌다.



To be continued  




오늘도 찾아온 한 무리의 사슴들





이 세상에 단 하나의 길만 있을 수 없듯,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삶은, 작고 크다 by 루시드폴






매거진의 이전글 Feeling aliv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