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마저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는 것.
사진 속에 담기는 것.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것.
나는 사진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을 사랑한다.
아무리 머릿속에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기억속에서 조금씩 지워지기 마련이지만.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애석하더라. 그래서 난 결국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그 구조는 나의 눈과 매우 유사하나, 그것이 기록할 수 있는 장면은 나의 기억력보다 훨씬 방대하고 세밀했기 때문에.
심지어, 내 마음이 끌리는대로 색을 입힐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리고싶은 부분은 잘라내거나 가릴수도 있었기에- 어쩌면 사진이야말로 내 추억 미화의 주범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왜곡은, 과도하지 않은 기억의 미화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 위를 단색으로 두껍게 칠해 덮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내 눈과 내가 보고있는 풍경 사이에 카메라가 끼어드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균형있는 구도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특히, 내가 유독 애정하는 장면은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는. 투박하고 색감이 강한 장면인데, 어디에서든 그런 풍경을 포착한다면 나는 곧바로 사진을 찍어댄다.
나의 취향을 덧입히면서도 당시의 다채로운 색과 빛은 그대로 살려두기 위해 나는 사진을 보정할 때마다 매번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내 얼굴이 나온 사진만큼은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위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글을 쓸 적에는 그럴듯하고 섬세한 언어로 내 심정을 돌려서 표현하는 때가 많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났을 거리감을 꾸밈없는 사진으로 좁혀놓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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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카메라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 내가 쓰고있는 디지털 카메라는 한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이며, 분홍빛 몸체에 은색 부속품이 조밀하게 박혀있는 모습이다. 그 전까지는 열악한 휴대폰 카메라(기종은 갤럭시 노트9이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것을 물려받아 상당히 오래됐다) 를 열심히 조절해가며 사진을 찍곤했으나, 사진을 꽤나 열정적으로 찍어대는 나를 알아챈 부모님께서 생일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주신 거였다. 부모님이 아직까지도 종종 '카메라를 선물해주길 잘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는 이것을 무척 애용하고 있다. 디카에는, 휴대폰 카메라와는 확실히 다른 감성이 있다. 쨍하고, 그레인이 잔뜩 들어간. 조금 지직거리는 네온사인같은 느낌.
말로 다할 수 없이 좋다.
말로 다할 수 없어 좋다.
힘들여서 묘사하지 않아도, 직관으로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장면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내 앨범이 자랑스럽다.
언젠가는, 아주 근사한 카메라 한 대를 장만해 세계 곳곳을 찍으며 살아야지.
나는 입버릇처럼, 또 한번 이렇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