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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Oct 15. 2023

자 오늘부터 저 디지털 노마드입니다.

디지털 노마드 한 달차의 회고록

아직도 처음 도착한 날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발리에서 산지도 한 달이 지났다.

첫 날 에어비앤비 비밀번호를 몰라서 방문 밖에 누워서 노숙했던게 아직도 생생하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거같다. (w/ lizard, mozzie, ants)


문앞에서 누워있다 어이가 없어서 하나 찍어뒀다.


이 한 달동안 느낀게 꽤나 많은데 말로 딱 설명이 어렵다. 글을 잘쓰는 편이 아니지만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이 회고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 글로 (그리고 최근 꾸준한 인스타그램으로) 아 저 친구 발리에 갔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다. 우연히 리모트 워크가 문화인 회사에 왔고,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디지털 노마드를 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작년에 시작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영어회화와 또 마침 독립 전이었기 때문에 꽤 쉽게 발리행을 결정했다.


동부투어 마지막이었던 Lampuyang temple, 사진을 더 많이 찍을 걸 그랬다.


1. 해외 여행 ≠ 해외에서 살기

가끔 발리에서 여행자들을 만나서 동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발리를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유명한 식당, 카페, 관광지들을 각 지역 별로 2~3일 안에 다 끝내버리는 한국 관광객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 식당을 찾을 때는 1. 지금 내가 먹고 싶은가? 2. 공유 오피스랑 가까운가? 3. 스쿠터를 타야하는가? 이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본다.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canggu생활이 4일 정도 남은 이 시점에서 구글 맵 최다 리뷰가 달려있는 너무 유명한 식당이 내 집 바로 건너 옆에 있었다는 걸 방금 알았다.


해외에서 사는 것과 여행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한정된 기간내에 canggu를 즐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 비치 클럽을 욱여넣는 일정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는데, 내가 먹고 싶은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발리를 그대로 즐길 수 있지만, 오늘 귀찮은 것들을 다 내일로 미루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처럼 발.알.못 소리를 듣기에 딱 좋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달이었다.

내가 처음만났던 aussie(오스트레일리아라는 뜻) FE 개발자 친구 charlie는 "발리는 모든게 평화롭고 여유롭고 자유로워." 라고 했다. 적어도 charlie랑 내가 발리를 즐기는 방법은 꽤 비슷한 거 같다.


공유오피스 bwork. 풀이 있다는거도 놀라운데 여기 대웅제약 회사 소유이다.

2. 리모트로 일한다는 것

해외에 오니 더 실감나는 부분인데, 리모트로 일해도 결국엔 한국 시간에 갇히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시간으로 1시에 미팅이 있으면 발리 시간으로 적어도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야한다. 우리 회사는 업무 시간이 따로 있지 않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 씩 한국 시간이 의식되는데 만약 10 to 7이나 9 to 6처럼 근무시간이 정해지는 경우에는 꽤나 스트레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이다. 발리에서 만난 터키 카페 사장님  oscar는 "너 정말 축복받았구나. 나도 그거(리모트 워크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할래 나 그 직무로 추천해줘"라고 했다.

약간 여담으로 발리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고 하는데 나는 디지털 노마드가 대부분 개발자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공유오피스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엔 개발자보단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프리랜서나 인플루언서, 마케터 직무의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몇몇 있는 개발자들은 발리에서도 항상 오피스에만 있다. 미국 출신 개발자 billy는 나보다 빨리 출근해서 나보다 늦게 퇴근한다. 옷도 맨날 똑같아서 집에 안가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옆자리 친구는 이름을 모르는데 맨날 둘이 붙어서 코드리뷰하는 거 같다.


deli canggu promotion 행사날 지금보니 이게 b work에서의 마지막이었다.

+ 10.15일 수정) 노마드 중에 개발자가 적었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9월의 이야기였다. 10월에 공유오피스에서 스몰톡하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software engineer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직무는 역시 프론트엔드 직무가 많다. 다들 리모트를 할 즈음이면 연차가 꽤 쌓여서 디자인을 겸한다던가, 백엔드나 옵스를 조금 다루는 풀스택들도 있었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그러니까 내년 목표는 풀스택 개발자 체험하기로 결심했다.



La brisa sunday market에서 만난 레모네이드 꼬마. 호주누나들이 번호를 따가셨다.

3. 영어권에서 산다는 것

보통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이다라는 곳의 특징이 몇몇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English-Friendly 한가? 이다. 발리 역시 호주인이 절반 이상이고, 1/4 정도는 유러피안이다. 외국인 뿐만 아니라 체감상 90%의 인도네시안들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발리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영어회화가 꽤 늘 수 있지 않을까였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내가 발리에 와서 가장 많이 말한 문장은 바로 "Can I get a one iced americano(long black)? double please."이다. (여담으로 이 문장에 한해서 발음이 꽤 좋은데, 우붓에서 썼더니 나보고 states 출신이냐고 했다.)

한국에서 영어회화를 그래도 1년여 하면서 느낀게 있는데, 난 영어보단 그냥 평소에도 말을 조리있게 못하는 거 같다. 한국말로도 똑부러지게 말을 못하는데 영어는 더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별개로 외국인친구랑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재밌고 도움도 된다. 공유오피스 동기 독일인 jorden이 여행갔었던 일을 설명할 때, "나 주말에 우붓을 놀러갔었어. 나 두 가지 부분에서 놀랐는데, 첫 번째는 jungle fish라는 식당이 끝내주게 맛있고 멋졌다는 거랑 한국인들이 엄청 많았다는 거야." 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만약에 내가 말했으면 "나 주말에 우붓 놀러갔어. 한국인 엄청많아서 놀랐어. 아 갔던데? 어.. 정글피시였나 거기 괜찮더라" 이런 식으로 말했을 텐데 영어를 할 때 앞으로 나도 jorden처럼 위트있는 화법으로 말할거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영어가 아니라 평상시에 말을 어떻게 하냐가 문제인거 같다.)


오늘 당장같이 먹었던 Hoian, 진짜 canggu에서 먹은 거 중에 2손가락안에 들어가는거같다.


4. 떠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것

첫 한 달동안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여행자들이랑 놀면 정말 신나는 낮과 밤을 보낼 수 있다. 한국인 여행자들과 여러 비치클럽과 클럽 도장깨기를 했던 기억은 정말 나중에 생각해도 재밌을 거 같다. 또 21살 gen-z aussie인 isa와 선데이 마켓과 핀스를 갔던 기억도 너무 생생하다. (불과 이틀 전이니..)


여행자들은 한 지역에 오래 있지 않는다. 짱구에 2~3일 정도 머물다가 다른 지역으로 혹은 한국으로 떠나버린다. 개인적으로 친해져도 금방 떠나가게되어 참 아쉬운데 그런 측면에서 발리에서 1년동안 살고 있는 직장 동료인 jun에게 참 고맙다. 좋은 짱구의 가게와 멋진 장소들, 그리고 항상 심심할 즈음이면 먼저 연락을 줘서 묻지마 픽업으로 나를 데려간다. 작성일 오늘 아침에도 pool이 있는 너무 멋진 식당에서 아침도 먹고 일도 했다. 사실 해외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를 만나면 되게 반가운데 같은 회사라서 극악의 조건을 뚫고 같이 다닐 수 있다는게 참 좋다.

(내가 말하는 극악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1. 낮 시간엔 일을 해야함. 2. 중간에 충전도 가능한 카페를 가야함. 3. canggu에서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가야함. 4. 다양한 컨텐츠(보드게임, 로컬 친구 소개, 가라오케, 비치 클럽 등)를 소개해줘야함)

이 모든 조건을 맞춰주는 jun에게 고맙다. jun과 indri가 있어서 짱구생활이 못해도 4배는 재밌어진거 같다.



더 많은 내용을 여러 관점에서 쓸 수 도 있을 거 같은데 나의 글 솜씨와 시간, 그리고 뭔가 깨달은 거처럼 말하는 내가 좀 보기 싫기도 해서 이번달의 회고는 이쯤에서 마칠까 한다.


마무리하면서 한국에서 하던 lst 스터디에서 배웠던 문구 중에 되게 인상적이었던 문구가 있는데 요즘 종종 생각이 나곤 한다.(이 문구로 레터링을 고민중이다..)


Step out from your comfort zone


엄청난 도전이란 건 없지 않나 싶다. 그냥 컴포트 존에서 한 번 나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의외로 크다고 생각했던 도전들이 별게 아니어보인다. 다들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보는건 어떨까? 나도 다음달엔 컴포트 존이 되어버린 canggu를 벗어나 보는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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