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을 걷는 길에 챙겨야 할 마인드.
아주 고즈넉한 시간이 찾아오면,
커피 한 잔과 더불어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는다.
이럴 때는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1번이 잘 어울리곤 한다.
때론 고요한 워십음악이나 기타 연주곡도 무척 괜찮게 여겨진다.
창문을 열어놓고, 오전의 햇살과 함께
먼데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면 마음도 사뭇 몽실거린다.
어린 시절 솜사탕의 추억이 강렬해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모든 것이 좋고 평안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폭염으로 유독 맹렬했던 올여름도 저 멀리 뒤안길로 아주 천천히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궤적을 닮아 있는 계절의 흐름은
그렇게 또 올해의 마지막을 향해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간다.
늘 우린 바삐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고 그렇게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스스로도 자신의 나이브함이 발견될 때마다 곁눈질로 노려보는 듯하다.
사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순간에 잠시 멈추어 서서 살아온 날을 회상해 보면
어떻게 내가 그 시절을 견디고 살아왔을까 하며
잠시 기억의 틈을 더듬고는 아연실색하게 될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과연 그때의 나처럼 해낼 수 있을까?
사실 자신 없게 다가오기도 한다.
'막상 닥치면 다 한다'라고 속으로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그때의 내가 미숙하고 무지했기에
그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었으리라.
머리가 굵어지고 경험이 쌓인 지금의 상태라면
똑같은 방법으로 그 시절을 지나오진 않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무지한 내가 미련해 보이기만 할까?
그래도 묵묵히 비바람을 견디면서 걸어온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는 지금의 나는
측은함과 동시에 그래도 잘 견뎌냈다는 기특함과 고마움으로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게 마련이다.
운이 좋아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분에 넘치는 물질을 소유하게 된들.
당장은 기쁘고 좋을지 몰라도 나의 그릇을 초과하는 것들은
사실 축복이 아닌 저주에 가까울 때가 많다.
세상이 만만해 보이고, 오만함의 자리에 오르기 쉽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일은 내가 소유한 것에 대한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 마음은 비단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 사람에게도 통용된다.
그리고 나아가 삶 역시도 마찬가지로 바라보게 되기 쉽다.
소중함을 인식해야 감사할 줄 알고 그 마음이 진짜 행운을 부르기 마련이기에
그런 마음의 상실은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고난과 어려움의 터널을 느린 걸음으로 통과할 때.
그 속에서 만난 난관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걸었던 삶.
그리고 그 끝에 주어진 성취는 비단 어떤 결과물을 획득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더 큰 보상은 바로 나의 마음 그릇의 확장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길을 험난하게 버티고 넘어온 사람들.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빙긋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 순간은
과거의 나에 대한 기특함과 더불어
지금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추억이 아름답다 여기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삶을 걸어왔기에 주어진
커다란 선물을 마음에 품고 생을 걸어간다.
돌아보면 삶은 참 아름다웠고 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