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쳐 본 아줌마의 하소연-3
두 번째 수험생활, 임용고시.
수능을 망쳐버리고 3년만에, 본격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늘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다. 나는 몸이 아파 중학교때까지는 다른 상위권 친구들만큼 잘 하지 못했으니 고등학교때는 누구보다 오래 많은 시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만 그런 것도 아니고, 1-2학년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시절 내내 동아리활동이나 축제활동 같은 것은 전혀 즐기지 않았고 친구들과 잘 놀러다니지도 않았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에 외모 꾸미기에도 관심없었다. 썬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은 맨 얼굴로 펑퍼짐한 교복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공부만 했다. 운동이나 건강한 식사 따위에도 신경쓰지 않아 10키로그램이 불었다. 그런데도 성적이 시원하게 오르질 않아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같은 방법으로 더 오랜시간 공부에 매달렸다. 옳은 방법으로 제대로 공부해야 성적이 올랐을 텐데,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냥 막연하게, 이렇게 열심히 하면 성적이 잘 안나오다가도 수능때 잘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보상 심리.
고등학교 졸업식때는 그 모든 게 너무 아쉽고 억울해 마음이 착잡했다. 이렇게 수능을 망칠 줄 알았으면 그냥 적당히 공부하고 쉴 때는 즐겁게 놀걸. 이정도 수능성적은,. 단순히 '오랜 공부시간'에 집착하지 않았어도 나왔을 것 같은데.
대학생이 되어서는 절대 공부'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의 천성이 성실 그자체인데다가 겁이 많아 성적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날 것 같은 생각에 교수님의 수업은 열심히 듣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강의 시간과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열심히 딴짓들을 했다. 매일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을 하고, 머리에 고데기를 하고, 옷을 바꿔 입고, 구두를 신었다(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촌스럽지만 원 없이 꾸며봤기에 후회는 없다). 수업을 마치면 과 소모임 활동을 하거나 교육봉사활동을 했다. 수시로 친구들과 술자리도 갖고 맛집으로, 쇼핑으로 놀러다녔다. 간간히 미팅도 하고(미팅이 연애로 이어진적은 없지만-.-), 영화에 연극에 콘서트도 열심히 보러 다녔다. 공부 이외에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했다. 대학교 졸업을 할 때는 고등학교 졸업식 때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때까지 이렇게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3학년이 끝나는 겨울방학때부터 본격적으로 임용고시 준비에 돌입했다.
수험생활이 시작됐지만 고3때처럼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쏟고 싶지 않았다. 그때랑 다르게 '오랜 시간'이 아닌 '옳은 방법'으로 알차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의 공부 계획을 세울 때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이 일정이 꾸준히 유지만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래와 같이 1년 내내 꾸준히 생활했다.
아침 6시 기상.
6시-7시 : 학교 운동장 조깅
7시-8시 : 아침식사하고 씻기
8시-12시 : 교육학 공부(40분 공부 후 20분은 도서관 휴게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덜거나 음악 듣기, 그렇게 1시간씩 4번 공부)
12시-2시 : 점심식사하고 커피마신 후 낮잠자기
2시-6시 : 전공 특수교육학 공부(오전 교육학 공부할때와 마찬가지로 40분 공부, 20분 휴식)
6시-7시 : 저녁식사하고 산책하기
7시-10시 : 특수교육 교육과정과 특수교육법 공부(마찬가지로 40분 공부, 20분 휴식)
10시부터 씻고 잘 준비 후 11시부터 취침
공부를 덜 하더라도 아침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세 끼 모두 기숙사 식당에서 반찬을 골고루 먹었다. (그래서인지 고3때와는 반대로 임용고시 수험생활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날씬하고 예뻤으며 피부도 깨끗했다.) 공부는 학교 도서관에서만 했고, 기숙사나 휴게실에서는 공부하지 않고 철저히 쉬기만 했다. 가장 졸린 시간에는 낮잠도 잤다. 고3때는 공부하는 시간이 아깝다며 운동도, 수다도, 낮잠도 멀리하고 낑낑거리며 공부했는데 그거에 비하면 대학교 4학년의 하루 루틴은 아주 널널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유로운 일정 속에서 집중이 훨씬 잘 됐다. 전공서적에 완전히 몰입해 '이 내용 진짜 흥미롭구나'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낑낑거리던 고3때는 이렇게 몰입하고 집중한 적이 없었는데.
집중만 잘 된 게 아니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고3때는 많은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공부했다. 시중 문제집, 모의고사 문제 등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푸는데 수능문제도 이 문제들 중에서 비슷하게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교과서의 기본 개념과 내용은 내신 시험때 공부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했다. 특히 수학 과목에서.
하지만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는 모의고사문제는 거의, 아니 한 문제도 풀지 않았다. 대신 교수님께서 수업하신 전공서적, 전공과 교육학의 핵심 '개념'이 정리돼 있는 기본 수험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파고들었다. 모든 내용을 구조화하여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문제는 철저히 '기출'문제만을 반복해 풀었다. 대신 기출문제에 나온 단어, 지문은 관련 기본서를 찾아 어느 부분에서 어떤 형식으로 출제됐는지 살폈다. 그러자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했던 고3때보다 훨씬 공부가 즐거웠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공부내용이 거대한 풍선이라면, 고3때 문제풀이 위주의 공부는 풍선의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계속 바람만 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본서 정독위주의 임용고시 공부는 풍선의 구멍을 먼저 꼼꼼하게 메운 후 공기를 불어넣어 실제 풍선의 크기를 키우는 느낌이었다. 조금씩이지만 풍선이 커지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는 공부.
임용고시 전날,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잤다. 임용고시 당일 시험보기 직전까지도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나왔을까 그저 궁금했고,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이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들었다. 1차, 2차, 3차에 걸쳐 임용고시를 봤는데 모든 과정이 그랬다.
그리고 난, 임용고시에 한 번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로 발령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