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쳐 본 아줌마의 하소연-4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게된, 수능을 망칠 수밖에 없던 이유
임용고시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시험을 잘 보려면 공부머리가 타고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공부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능을 망친 것도, 열심히 노력했으나 공부머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든, 국가고시이든 공부머리가 좋아야 잘 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공부머리가 남다를 것 같은 사람은 존재한다. 유시민 작가님, 나경원 의원님처럼 뛰어난 언변을 지닌 사람들부터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이루는 학자들까지. 하지만 이것은 학교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다. 이런 경지까지 가려면 선천적인 재능과 학문을 탐구하는 능력, 끈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컸던 두 번의 시험을 거치며 수능이나 국가고시는 선천적인 능력이 별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은 ‘학문을 탐구하는 행위’ 가 아니라 기초 소양을 테스트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한다. 학문 탐구는 그 이후의 일이다. 국가고시 또한 ‘교사가(혹은 공무원이) 되어서 그에 맞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교육학(혹은 행정학) 자체를 탐구해 그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하는 학문 탐구까지 가야 선천적인 공부머리가 필요해진다.
수능이나 국가고시는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끈기 있게 공부하는 것이 선천적인 공부머리보다 훨씬 중요하다.
올바른 방법/꾸준히/흔들리지 않고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수능을 준비할 때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하지 못했다,
수능시험 문제는 문제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중,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오히려 문제집에 많이 나온 유형은 출제를 지양한다는 것을 알았다(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동료 선생님 중에서 꼭 한 해에 한두분씩 수능문제를 출제하고 오신다). 문제집이 아닌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의 전 과목 교과서에서 출제된다. 교과서는 수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번의 검토에 거쳐 만들어진 책이다. 시중에 쏟아지는 문제집이나 일반 도서들과는 정교함과 체계성에서 남다르다. 한 줄 한줄이 모두 중요하며 개념 설명 부분은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다양한 예시글, 삽화, 표, 그래프의 의미까지 철저하게 분석해서 봐야 한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교과서를 등한시했다. 특히 수학 교과서를 가장 소홀히 했다. 수학은 당연히 문제집 푸는 것이 공부의 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학 교과서에 설명된 개념, 원리를 제대로 읽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 수학 성적이 절대 잘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수능 국어는 국어교과서 뿐 아니라, 전 과목 교과서를 참고해 비문학 지문을 만든다는 어떤 선생님의 말씀에 무릎을 쳤다. 수능 국어를 잘 보려면 국어만이 아니라 전과목 교과서를 정독하며 문해력과 배경지식을 탄탄히 쌓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나선형 교육과정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기 때문에 제 학년 교과서를 살피기 전 이전 학년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를 소홀히 했기에 ‘교과서 등한시’의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됐다.
내가 선택한 사회탐구 과목만 그나마 교과서를 자세히 살펴보고, 다른 과목들은 내신 공부할 때 선생님들께서 짚어 준 부분들만 봤다. 수능 대비를 위해 이 교과서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수능 출제의 원천인 교과서를 소홀히하고 문제집만 풀어댔으니 완전히 잘못된 방법으로 헛것을 공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수능을 준비할 때 매일 흔들리고 불안했다.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니 모의고사 때마다 점수의 기복이 심했다. 어떤 모의고사는 문제집에서 본 문제들이 많이 나와 점수가 잘 나왔다(나중에 알고보니, 사설 모의고사는 그 출판사의 문제집에서 비슷한 문제를 많이 낸다.). 하지만 수능처럼 교과서의 개념을 출제하는 평가원 모의고사들은 점수가 터무니없이 낮게 나왔다. 점수가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게다가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0넌대 초반에는 선생님들이 동기부여랍시고 모의고사를 억지로 자주 보게 했고 그 점수로 등수를 매겨 수시로 공개했다. 가뜩이나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쉽게 지치는 나에게는 너무 혹독했다. 마음이 편안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잘못된 방법이었고 매일 흔들렸지만, 그냥 꾸준히 오랜 시간 공부하기만 했다.
수능을 망쳐버린 건 당연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