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차 특수교사의 고백
나는 손재주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어서 어릴 때부터 만들기, 그리기 등 모든 미술활동을 멀리했다. 삼십대 후반이 넘어가도록 색조화장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출근 때도, 결혼식이나 모임에 참석할 때도 늘 똑같이 3분컷으로 베이스랑 파운데이션, 파우더, 컬러립밤만 바른다.
나는 찐 내향인이다. 왁자지껄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공감해주다보면 기가 쏙 빨려 녹초가 된다. 모임의 인원이 적을수록 에너지가 덜 쓰이고 일대일로 대화할 때가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혼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나는 핫플레이스를 찾아가거나 새로운 경험을 활발히 하기보다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내가 놀랍게도 특수교사이다. 특수교사는 제과제빵, 바리스타, 공예활동 등 어느 정도 손재주가 필요한 실습을 많이 한다. 출근하면 혼자 있을 시간은 거의 없다. 수업시간에는 학생들과 아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격하게 공감해야 한다. 수업 시간 이외에도 동료 교사들, 관리자들, 학부모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업무를 한다. 게다가 '핫플레이스(테마파크, 각종박물관이나 체험관 등)'를 수시로 찾아 체험학습을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 수업도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조작하는 수업이 주를 이룬다.
특수교사라는 직업은 내 성향과 절대 안 맞아 보인다 하지만 벌써 12년째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 심지어 즐겁고 뿌듯한 순간도 꽤 많다. 의아했지만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안정적이고 워라벨이 가능한 직장이라서? 경력단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직장이라서?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이라서? 물론 다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왜 내가 특수교사여서 꽤 행복한지 정확히 알았다. 오늘 학생들과 국어수업을 했던 내용, 그리고 퇴근 후 저녁에 읽은 책의 내용에서 주는 메시지가 신기하게도 딱 맞아떨어졌다. 마치 오늘 "니가 특수교사를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겠다"는 신의 계시라도 내려진 것처럼.
특수학급 국어교과서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야기와 '인사 잘하고 웃기 잘하는 집'의 일부 에피소드가 소개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소년이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소년에게 내어 주고도 행복해하는 나무의 이야기이다. '인사 잘하고 웃기 잘하는 집'은 모래성을 쌓고 싶어하는 지체장애인 누나를 위해 주인공이 계곡의 모래를 가방 한 가득 담아 가져온다는 이야기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도움을 준 쪽이 오히려 행복해지는 이야기.
저녁 독서시간에는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를 읽었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남을 돕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고 하며 고향 상주를 방문했던 일을 예로 들었다. 저자는 상주의 한우를 홍보하기 위해 고민했고 '상(賞) 주는 한우'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친 김에 신나는 로고송까지 만드니 자신의 가게에 매출이 잘 나온 날보다도 그 날 하루 종일 몇 배는 더 행복했다고 한다.
특수학급 수업 때랑 저녁 독서할 때 같은 깨달음을 얻은 게 신기했다. 그래서 오늘의 뜻깊은 메시지를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찰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전혀 특수교사답지 않은 내가 특수교사로 12년째 꽤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이유도 이런 게 아닐까'
특수학급은 우리 학생들에게 '학습도움실'이다. 일반 교육과정을 소화하기가 어려워 학생의 적성과 수준에 맞는 방법과 내용으로 개별화된 수업을 받으므로 '학습에 도움을 주는'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습 도움의 목적으로만 특수학급에 오진 않는 것 같다. 정서적 도움을 받으러 오기도 한다. 아니, 내가 느끼기엔 오히려 후자의 목적이 훨씬 강한 것 같다. 가끔 학생들 몰래 통합학급을 염탐(?)하러 가 보면, 통합학급에서 어려운 수업을 듣느라, 와글와글한 반 친구들 사이에서 부대끼느라 우리 학생들, 기가 쏙 빨린 얼굴이다. 그러다 특수학급에 내려오면 한결 표정이 밝아진다. 혈색이 돌고 말이 많아진다. 웃음도 많아진다.
특수학급 학부모님들에게도 나는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예전보다 학생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3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담임선생님 혼자 세심하게 케어하기는 어렵다. 이는 장애학생이어도 마찬가지이다. 더 많이 관찰하고 살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학부모님들이 담임선생님들께는 선뜻 이런 부탁을 하지 못한다(요즘 소위 '진상'학부모들이 많다고 뉴스에 나오지만 이는 일부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선생님께 늘 죄송하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특수교사인 나에게는 좀 더 편안하게 말씀하실 수 있다. 학습, 정서적 요구사항을 개별화교육 회의나 수시로 이루어지는 상담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다. 학생의 진로에 대해서도 좀 더 심층적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이따금씩 우리 학부모님들께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하는 격려를 들으면 그 말만으로 난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마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누구보다도 많이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내가 행복한 것 같다. 그리고 일반 학생보다 더 걱정하며 학교에 보낼 우리 학부모님들과 자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내가 뿌듯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느끼는 행복감. 그 행복감이 정말 큰 직업이 특수교사이기에 내가 12년동안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앞으로 특수교사를 하려면 새롭게 공부해야 할 분야도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학부 시절과 신규 시절에는 불필요하게 여기던 분야였다. 그래서 이 분야는 등한시하고 특수교육대학원만 다녔다. 하지만 특수학급 담임으로 12년 지내오며 새롭게 공부하고 싶어진 분야는 바로 '심리상담'분야였다. 예전에는 특수교육에서 선행 사건 파악과 대체 행동 교수, 그리고 교육과정 수정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장애학생의 마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의사소통 자체도 어려운데 심리를 어떻게 파악하고, 상담은 또 어떻게 해' 라는 무지에서 비롯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내 보니, 우리 아이들의 의사소통이 서툴수록 내가 학생들의 마음을 더욱 잘 읽어야 한다. 게다가 실습, 체험학습 등과 다르게 심리상담이라면 내향적, 직관적인 나의 성향에 좀 더 맞으리라는 확신도 든다. 내 적성에 맞는 방법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특수교사를 하기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심리상담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