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L은 참 피곤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날이 서 있었죠. 가벼운 농담에도 눈을 부릅뜹니다. "그거 나 무시하는 소리냐"며 따지고 듭니다. 칭찬을 해줘도 꼬아서 듣습니다.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하면 "평소엔 내가 죽상이었다는 뜻이냐"라고 되묻습니다. L을 만나고 나면 기가 다 빠졌습니다. 그런 날은 저녁 내내 기분이 찝찝했습니다.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성격이 모날까. 나잇값 좀 하지."
안 본 지 오래됐는데 L의 뾰족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L의 그 방어적인 태도.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최근 내 모습이 그 얼굴 위로 겹쳐졌습니다.
공식적으로 ‘백수 탈출’을 선언한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불안정하고, 돈은 계속 나가기만 합니다. 세상이 저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L처럼 굴기 사작했습니다. 누가 안부를 물으면 "불쌍해 보이냐"라며 쏘아붙였습니다. 아내가 "고생했다"라고 말하면 "무능한 남편이라 비꼬는 거냐"라는 식으로 받아쳤습니다.
저는 어느새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 주변을 찔러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내 초라한 바닥을 들킬까 봐 겁이 났습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상처를 줬습니다. 가시에 찔린 사람들을 보며 비겁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L을 보며 느꼈던 짜증이 사실은 동족 혐오였다는 것을.
L의 날 선 말들은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나 지금 너무 불안하니까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비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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