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2024. 11. 14.(목)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오늘도 손녀딸과 아내의 역할 놀이가 한창이다. 역할 놀이를 하는 손녀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나의 귀를 즐겁게 한다. 딸네 집에서 어린이집까지의 거리가 가까워 손녀딸과 아내의 역할 놀이를 더 오래 보지 못하는 게 가끔 좀 아쉽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손녀딸은 어린이집 가방을 둘러메고 쏜살같이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내의 컨디션이 영 회복되지 않아 나 혼자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갔다. 이런 때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조금 늦게 갔다가는 주차할 곳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3시 18분이다. 예상대로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 손녀딸 태우기 가장 좋은 곳에 주차를 했다. 괜히 뿌듯하다. 손녀딸은 대개 3시 55분쯤 어린이집 로비로 나온다. 30분 남짓 시간이 있다. 뭘할까 하다가, 어린이집 주변에 있는 제천 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손녀딸 하원 시간에 늦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산책한 다음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첫 엘리베이터로 손녀딸이 로비로 왔다. 유리문 밖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온다. 나오자마자 가방을 벗어 나에게 주었다. 오늘을 딸내미가 좀 일찍 퇴근해서 어린이집 옆 놀이터로 오기로 했다. 손녀딸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딸내미가 오면 나는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손녀딸을 데리고 옆 놀이터로 갔다. 어, 그런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내가, "순돌아, 비 온다."라고 하자 손녀딸 왈, "비, 안 보이는데요."란다. 손녀딸은 아직 빗방울을 맞지 않은 모양이다. 빨리 미끄럼을 한 번 타라고 했다. 손녀딸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데, 이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차로 갈 수밖에 없었다. 차에 가더니 손녀딸은 차에 있던 비타민 사탕 하나를 내게 건네며 껍질을 까 달라고 한다. 하얗고 동그란 비타민 사탕을 들고 손녀딸은, "이거, 달님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아, 그렇구나."라고 맞장구를 쳐 주니 손녀딸은 비타민 사탕을 입에 쏙 넣더니 "이제 달님은 없어."란다. 비타민 사탕 하나 먹으면서도 손녀딸은 제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비타민 사탕을 다 먹고 손녀딸이 좀 심심해하는 것 같기에, 준비해 간 크래커를 주었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간식이다. 손녀딸은 크래커 하나를 손에 들더니, "이것 참 폭신해."라고 말하며 냠냠 맛있게 먹는다. 목일 메일까 봐, 준비해 간 따끈한 물을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아주 공손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손녀딸이 이렇게 공손하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기는 처음인 듯하다. 어린이집의 교육이 효과를 발하는 것일까?
그때 딸내미 차가 어린이집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손녀딸을 딸내미 차로 옮겨 태우고, 애착 인형 보노와 아침에 손녀딸이 가지고 온 캐릭터 인형도 잊지 않고 딸내미 차로 옮겨 실어주었다. 손녀딸에게 크래커를 집에 가지고 가서 먹겠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밥만 먹고 크래커는 더 이상 안 먹겠단다. 참 기특한 소리를 한다.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딸내미 차가 어린이집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내일은 사위가 회사를 쉬는 날이라 우리 부부는 하루 휴가를 얻었다. 나도 어린이집 주차장을 빠져나가 집으로 향한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