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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Dec 19. 2024

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경험하게 하려면

만약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숙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학교에서 민주적인 경험을 충분히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을 받는 동안 민주적 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한 터라,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하기에 고등학교의 경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7개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는데 그중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춘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에이, 설마 단 한 곳도 없었으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들어맞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정말로 단 한 곳도 없었다.


  '교직원 회의'라는 것이 있다.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1980년대 후반에는 거의 매일,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일주일에 한 번, 2023년 퇴직하기 몇 년 전부터는 필요할 때에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회의'의 공통점이 있다. 허울뿐인 회의라는 점이다. 교직을 시작할 때부터 교직을 그만둘 때까지, 그 '회의'에서 무엇인가에 대해 학교 구성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며 의논해 본 기억이 없다. 이미 결정된 어떤 일에 대해 통보를 받고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게 전부였다.


  교직원 회의에서 통보된 어떤 일에 대해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교직원 회의를 통해 통보되는 일은 교장이 결재한 일이었으므로 그것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교장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학교에서 교장의 권위는 실로 막강했다. '교장이 마음먹으면 못 할 일이 없고 교장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교장을 견제할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장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행위는, 교장의 눈 밖에 나는 걸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교장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그 사람의 교직 생활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교장의 눈 밖에 난 교사는, 까탈스러운 교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교의 이런저런 일들이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교장이 결심하면 그대로 시행되었다. 교장의 결정에 대한 '건전한 비판'조차 잘 용납되지 않았다. 물론 아주 드물게,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교장도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아주 드물었다. 천연기념물 수준이라고 해야 할 터이다. 그래서 대개의 교사들은, 교직원 회의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통보를 받으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일이 교육적으로 특별한 효용이 없는, 보여주기에 불과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의 이런 태도는 학생들을 대하는 데에 그대로 투영된다. 교사들이 교장의 결정이나 지시를 비판 없이 따르듯이, 학생들이 자신들의 결정이나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사는 교장의 결정이나 지시를 따르고, 학생들은 교사의 결정이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하나의 학교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해야 할 터이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학생들은 나중에 직장 상사의 지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학생들이 내가 한 말에 "왜요?"라든가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 말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내 말을 비판하면서 다른 제안을 하는 건 아예 없었고 말이다. 교장의 결정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걸 당연하게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의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비교적 굳건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민주주의 유전자가 내재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학교 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민주주의 정신을 학습했다고 해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니 더욱 아쉽다. 만약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면, 교사들이 교장의 잘못된 결정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교사의 일방적인 말에 언제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반석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충분히 쌓은 사람들이라면 위에서 내려오는 위법한 지시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런 지시나 결정을 단박에 거부하지 않겠는다. 나아가 이런 상황이 일상화하면 위법한 지시나 결정을 함부로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고등학생들에게 민주적인 경험을 쌓게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 내내 교사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강의식 일제 수업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학생들이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각을 쏟아내려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할 테고 사람들과 더 많이 토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어떤 사안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도 더 커질 게 아닌가. 생각이 깊은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강의식 일제 수업의 틀을 깨기를 바라는 마음, 참으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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