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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Mar 03. 2023

헤드셋을 쓰는 순간, 나는 회사원이 아닌 작가가 된다.

겸업 웹소설 작가의 고군분투 생존기

웹소설을 쓰게 됐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가장 먼저 전했던 친구. 그 말을 듣고 작년 생일에 무접점키보드를 선물해 줬던 그 친구에게 올해는 헤드셋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헤드셋을 쓰는 순간, 나는 회사원이 아닌 작가가 된다.


이제 더 이상 헤드셋이 단순히 음악을 듣는 용도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음질보다도 중요한 게 바로 디자인 아니겠는가.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거금을 들여 에어팟 맥스를 사게 되니까 말이다. 그만큼 헤드셋이 어느 때보다 대중화된 시대이다. 과거에는 오타쿠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던데,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이면 칸마다 둘셋은 헤드셋을 끼고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헤드셋의 존재이유를 의심했다. 저렇게 크고 무거운데 왜 쓰는 걸까. 우리에게는 무선 이어폰이라는 아주 작고 유용한 존재가 있는데 말이다.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고, 반경 10m 이내에 있는 모두에게 내가 헤드셋을 끼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미친 존재감. 그 무엇도 나에게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하도 유행이라기에 친구의 헤드셋을 한 번 빌려꼈을 때는 흔히 말하는 요다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내 머리통이 작진 않았거든.


그런 내가 헤드셋을 갈망하기 시작한 건 오래지 않은 일이었다. 퇴근하고 작업을 시작하면 나는 으레 무선이어폰을 꺼냈다. 그렇게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4-5시간을 작업하고 나면, 의외로 손보다 얼얼한 게 귀였다. 그렇다. 남들보다 조금 작은 귓구멍을 가진 나에게 무선이어폰의 존재감은 엄청났던 거다. 전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없이 작업을 하기에는 나의 과몰입이 허용치 않았다. 슬픈 장면에서는 <슬픈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벅차오르는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했다. 맘에 드는 노래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리듬까지 타면서 타자 속도가 절로 빨라졌다. 이런 치트키를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 처음 헤드셋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귀는 물론이고 목도 안 아파야 하니 최대한 가벼운 게 좋겠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면 더 좋겠지. 타이밍 좋게 제임스 클리어의 <atomic habits>를 읽고 난 후에는 그 갈망이 명분까지 얻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지킬 수 있는 습관을 만드는 4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분명하게

2. 매력적이게

3. 쉽게

4. 만족스럽게


이 중에서 3번 '쉽게'에 집중해 주시길. 어떤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최대한 그 행위를 단순하고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여기서 나를 홀린 대목은 바로 이거였다. 행위를 시작하는 온오프 버튼을 만드는 것.


유레카! 헤드셋은 완벽한 버튼이었다. 헤드셋을 쓰면 작업을 시작하는 것.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행위였다. 됐다, 명분이 생겼다. 이제 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내가 심각한 선택장애라는 것. 아니, 세상에 이렇게 헤드셋 종류가 많았던가-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던 중, 내 생일이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그날, 원데이 특가가 떴다. 위시리스트에 두고 고민하던 상품 중 하나였다. 맙소사, 이건 사라는 계시였다. 고민하지 않았어도 샀어야 하는 가격이었다. 그러니 고민을 거듭했던 나는 어땠겠는가. 생일 선물로 무엇을 가지고 싶으냐는 절친의 물음에 바로 답을 보냈다. 단언컨대 올해 받은 수십 개의 선물 중 가장 기다린 선물이었다.


마침내 배송된 헤드셋을 처음 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장 좋아하는 [벅차오르는 케이팝 플레이스트]를 틀었고, 정말 제목 그대로 벅차올라 죽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듣던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저 소리였을 뿐이었다. 요다 같으면 어떤가. 헤드셋을 낀 순간,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단절된 채, 오롯이 내가 만든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헤드셋을 절대 대중교통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나만의 법칙이다. 사실 한번 헤드셋을 써본 사람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헤드셋을 쓰다가 무선이어폰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음질은 물론이고 귀의 피로도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느껴지기에. 하지만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더라도 절대 가는 길에는 헤드셋을 쓰지 않는다.


헤드셋을 쓰는 순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오롯이 작가로 존재하는 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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