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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당설탕 Apr 05. 2023

Why 동기부여?

동기부여에 대한 단상

유튜브에 '동기부여'라고 검색하면 수천 개의 동영상이 나타나고 이들은 적게는 수만회 많게는 수백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동기를 부여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오늘은 동기부여 유행의 본질과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WHY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어떤 계획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쓰는 기법으로 5W 1H가 있다. 5개의 W와 1개의 H라는 뜻인데, 여기서 W는 Why, What, When, Where, Who이고 H는 How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When, Where, Who가 정해진다.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난 OOO이다." 너무나 쉬운 정의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Why, What, How이다.


Why의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해 보자.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TED 강의로 유명한 사이먼 시넥 (Simon Sinek)은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회사의 "WHY"를 찾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WHY란 믿음, 목적, 존재 이유다. WHY는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이먼 시넥의 정의를 따르겠다.


Why(왜)를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오래걸린다. 하지만 Why를 정의해야 What과 How를 계획할 수 있으므로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초조해진 이들은 일단 What부터 정해놓고 How를 계획한다. 예를 들어, 의대를 목표로 수능을 공부하는 것이나 대기업을 목표로 토익을 공부하는 것이다. How를 계획하거나 실행할 때는 너무나 마음이 편안하다. 몸은 고생하지만, 마음은 편하고, 가볍고, 개운하다. 그러나 Why가 없는 What과 How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쯤에서 다시 유튜브의 동기부여 영상들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왜 동기부여 영상을 찾는지는 명확하다. 무언가를 실행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동기는 결국 Why이다. 내 안의 Why가 없으니까 자꾸 밖에서 Why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Why의 효용은 오래가지 못한다. 유튜브가, 타인이 만들어낸 수입산 Why가 아니라 원자재 채굴부터 생산까지 자신이 직접 한 국내산 Why를 적용해야 한다. 


Why를 정의하고 나면 What과 How는 비교적 찾기 쉽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목표를 찾으면 되는 것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으면 그만이다.




WHY를 찾는 방법


자신의 Why를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진실되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타인의 시선 없이, 사회의 규범을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마음속 쾌락, 말초신경을 흐르는 그 짜릿한 전기신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내가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나는 인정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친한 지인이 자신의 SNS에 쓴 글의 일부이다. 그는 자신이 글쓰기를 하는 이유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함이라고 고백했다. 해당 문장을 읽으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솔직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예시로 든 SNS글의 경우 만약 나의 지인이 인정욕구라는 Why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애써 무시했다면 그는 글쓰기를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인데 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Why(인정욕구)를 정의함으로써 그는 더 행복하게 글쓰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의 Why가 고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Why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쾌락과 관련 있다. 따라서 자신이 발견한 Why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Why를 수용해야 한다. 국내산 Why만큼 좋은 Why는 없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자신의 저서 <원칙>에서 극단적 진실성을 자신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다. "극단적 진실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Why를, 즉 의문을 가지는 것이 어려운 곳이다.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속 성장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고속 성장 시기에 사람들은 삶에 대한 공통적인 What과 How를 학습하게 되었고 이는 세대를 거치면서도 전해져 내려왔다. 학벌주의, 대기업, 전문직 선호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렇게 한국은 획일화된 가치 체계 속에서 개성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획일화된 한국 사회의  What과 How를 추구한 이유는 그래도 그 What과 How가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공통의 What과 How의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따라서 이제는 스스로의 Why를 찾고 이에 맞는 What과 How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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