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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 Oct 27. 2024

정물화를 좋아하세요?

직접 그려보니 알게 된 것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그렇게 작품이 많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술을 사랑하고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자부했기에 아무리 많더라도 '나야 좋겠지' 했다. 설마 지쳐서 세계적 명화들을 뒷전으로 두고 무려 루브르를 뛰쳐나가게 될까 싶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네다섯 시간가량을 루브르에서 보낸 후 마지막 전시관은 채 다 돌기도 전에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해가 지기 전에 오르세도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곧이어 강행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사람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그림의 양에는 한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루브르를 차치하고 다른 국가들을 여행할 때도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 하나하나를 다 음미하는 것은 보통 체력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엄청난 대작 앞에서도 일명 동태눈을 하게 될 때가 온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끼리 그때를 더러 '교양 치사량'에 달한 것이라고 불렀고 우리는 서로의 치사량을 감지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었다. 동태들끼리 슬쩍 눈을 마주치게 될 때면 서둘러 미술관을 나서서 근처 버블티 집을 찾아 당분을 들이켰다.


이러다 보니 유럽의 몇 도시를 여행한 이후로는 미술관 내의 모든 작품들을 하나하나 음미하기보다 내 마음과 찡하고 주파수가 통하는 작품 위주로 보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사과와 포도, 주전자를 그린 '뻔한' 정물화보다는 오묘한 색감과 울렁이는 감정, 실감 나는 표정을 담은 풍경화와 인물화가 더 눈에 들어왔다. 폴 세잔이라는 이름값에 세잔의 사과 그림 앞에서는 몇 번이고 멈춰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모네의 그림을 봐도 전율이 크지 않은 체력 상태일 경우가 잦았고 그럴 때면 세잔의 그림 앞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몇 초가 채 되지 않았다.


유화를 배우기 시작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세잔의 진가를 깨달았다. 그는, 그는 천재였다!







유럽에서 돌아온 이후 직접 유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던 나는 동네 화실을 향했다. 선생님은 형태를 연습하기에 가장 쉽다면서 정물화부터 그리며 기초를 쌓을 것을 권했다. 처음으로 그린 사과는 웬걸, 마치 토마토 같았다.


대강 빨갛고 꼭지가 달린 과일을 그려내면 토마토로 보이기 십상이다. 사과가 아무리 구 형태라고 해도, 소묘에서 주야장천 시키는 일반적인 구체와는 다른 사과만의 형태가 있는 것인데 나는 사과의 어디가 볼록한지 그래서 어디가 어둡고 밝은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사과란 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과일이냐를 이해해 보고자 집에서 아이패드로 몇 번 사과를 그려보았다. 여러 번 연습한 결과 그나마 사과다운 사과를 그려낼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사과 그리는 법을 몇 번 돌려본 이후에는 세잔의 사과를 모작했다.



나는 사과의 앞 뒤 양옆, 심지어는 배경까지 뜯어보며 따라 그렸다. 그리고 감동 받았다! 세잔은 사과를 정말, 정말 잘 그렸다.


아이패드로 연습한 것을 토대로 실제 유화로 사과를 그리려고 시도해 보았을 때는 더 크게 감탄했다. 어제 그린 것과 꼭 같은 그림을 그려내는 것인데도 디지털 페인팅이 아닌 실제 유채물감을 다루려니 영 맘 같지가 않았다. 이런 재료들을 마음에 쏙 들게 컨트롤하여 세잔처럼 그리려면 얼마나 잘 그려야 하는 것일까 하는 감탄이 숨 쉬듯 나왔다. 일단 마음의 여유와 스킬이 없으면 물감들이 금방 섞여서 원하는 색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베이스에 흰색이 깔려 있고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 덧그리면 흰색과 섞여 혼탁해지기 때문에 비비드한 톤을 낼 수가 없다. 붓도 물감별로 마련해 놓은 것이 아니라 몇 개를 가지고 돌려 쓰다 보니 참 귀찮은 상황이 많이 닥친다. 예를 들어 붉고 노란 톤의 사과를 그리다가도 녹빛 계열의 배경을 건드리면 좋겠다 싶은 때가 오고, 새하얀 색도 필요하다가, 흰색이 전혀 섞이지 않은 연두 색도 필요하다가, 다시 처음의 붉은 계열이 필요한데…. 붓을 그냥 100개 정도 구비해 놓고 각각 다 다른 색 전용으로 써야 하나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세잔의 실력보다 더 크게 체감이 된 것은 그의 초기작에서의 사과와 후기작에서의 사과가 얼마나 다른지와 그것이 왜 중요한지였다. 세잔의 사과는 후기로 갈수록 점점 더 사과의 형태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세잔이 근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체감하지 못했었다. 이번에 실제로 모작해 보면서야 비로소 붉은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도, 반사광이 없어도, 단순한 동그라미에 불과한 형태여도 사과 같아 보이는 사과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전환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왜 세잔이 사과가 아닌 사과의 본질을 그렸다는 것인지를 직접 그려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잔은 30여 년 지기 친구이자 프랑스의 소설가, 언론인, 비평가였던 에밀 졸라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세잔은 성공했다. 그의 사과는 파리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그리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와 함께 묶이는 세계 3대 사과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세잔이 과연 대단한가 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세잔의 대단함에 놀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그의 사과에 놀랄 수 있으려면 일단 그에게 놀랄 줄 아는 세계에 속해야 한다. 세잔의 사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들어서 아는 것을 넘어, 직접 놀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직접 사과를 그려보고서야 세잔의 사과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유럽의 여러 미술관들에 다시 방문한다면, 그의 사과를 지나쳐가지 않고 그 앞에 유심히 서있을 것이 분명하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Paul Cézanne, Still Life with Apple and Oranges)


세상 다른 모든 것들도 이와 같겠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들이 있을 테다. 나는 알고 보니 정물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또 어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나의 시도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러분은 정물화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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