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경계와 프레임 사이 (1) : 질문
당신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으신가요?
길을 가다 만난 고양이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시간의 틈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어린 시절을 살았던 빌라 옆 놀이터 담장 위의 고양이를 찍은 아주 오래된 사진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그래서 잠깐이라도 그 시간에 머물 수 있다면, 저 사진의 [틈]으로 가고 싶어요.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하교하면 엄마가 설탕에 재운 토마토를 주시던 순간으로요. 하지만 갈 수 없겠지요. 이미 아버지는 영영 만날 수 없고,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전 이미 아버지 보다 더 나이를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IMF도 모르시거든요. 사진 한 장엔 그 시절의 그리움도 함께 있습니다.
묻습니다.
우리는 진정 소통하는 것일까요? 경계(영역)의 동물인 고양이만큼이나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있냐 묻고 싶어요.
전 아주 연약한 존재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제 약해질 순 없어 무조건 견뎠지만 맘처럼 쉽진 않습니다. 사회를 보던 날카로운 펜은 이미 무뎌진지 오래. 보수적이고 소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런데, 가정 안에서도 서로를 몰라 상처를 입히지요.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완벽히 이해하며 살까요? 아마도 아이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시간의 틈으로 거슬러 가면 10년 전 나의 시선이었을 겁니다. 저도 겪지 않았더라면 스스로의 공간은 발견조차 못하고 외부의 프레임만 바라보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 <프레임>은 유연해야 합니다. 경직된 시선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권력이 가진 경직이 가장 날카롭지요. 경험의 관계성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과거의 나의 시선은 그날까지의 경험에 기인한 것입니다. 12월 3일 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지만 그 영향력은 다를 겁니다. 아픔도 다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가치에 기반한 시선을 가져야 할 겁니다. 시선은 자유롭되, 마땅한 책임을요.
길고양이들의 경험을 우리가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고유함은 존중해줘야 할 가치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선택을 할 때,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침범하지 않는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또 상대를 내 뜻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요. 마찬가지로 정책결정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프레임을 보다 유연하게, 상호 관계성을 토대로 한 선택이 보다 나은 건강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시선의 방향은 다르더라도,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사회니까요. 길고양이를 보며 소심좌 한 명이 잠시 끄적여봅니다.
photo by 인생정원사
이어지는 글
1. 길고양이들의 인터스텔라
2. 맹목의 공간을 경계하다
4. 병원, 가지 않을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