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경계와 프레임 사이 (2) : 고백
아이쿠!
그저 얼음에 미끄러진 것뿐이었다. 머리가 울리고 꼬리뼈가 아파서 일어날 수 없다. 넘어진 건 순간이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기나긴 통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를 두고 병원 갈 수 없어 전화했으나 전화기 속에 울리는 그의 말에 실망감이 든다. “ 어쩌라고?”
10년전. 결혼 후, 그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불안정한 20대를 보냈기에, 평안함을 원했다. 하지만 통제하는 삶에 조금 지쳐버리기도 했다. 사실 아이가 장애가 아녔더라면 얼마든지 나 자신을 찾을 기회가 있었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오롯이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 어느 순간 아프게 느껴졌다. 10년 동안 참다 토해내듯 뱉어낸 말들은 아마 상처가 되어 그의 입을 다물게 했겠지. 맹목적이면,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 것 마냥 살아왔다. 그 안에서 주는 안정감은 평화롭지만,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1년 동안 그것만을 생각하고 이뤄냈다. 분명 아이에게 집착과 같은 정서적 탯줄을 끊어내고 아이의 장애에 대한 죄책감과 스스로를 분리했다. 하지만 남편이 주는 안정감 밖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었다. (아이에겐 아주 잘해주는 고마운 아빠인 건 변함없음을 첨언해 둔다.) 20대처럼 공부를 하고 이리저리 삶의 목표를 찾아본다.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쓴다. 난생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나, 또, 시행착오를 했다. 서로가 다치고 아픈 과정이 이어졌고, 노력하는 타이밍은 어긋나 버렸다. 아,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 왜 이렇게 된 거지? 40대가 되어도 이리 바보 같을 수 있나. 정작 20대의 나는 더 많은 걸 이뤘는데, 40대가 되어서는 목표를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박사수료를 했던 28살에는 인생의 진실함을 알지 못했다. 그저 프레임에 맞춰진 피상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 만든 프레임을 통해 판단하고 바라보며, 성취하는 삶을 살았다. 30대는 맹목의 공간에서 아내로써 살고, 어머니로써 살았다. 그러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한 채 애쓰면 애쓸수록 가질 수 없는 평범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40대에 이르러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 <마치 대운이라도 바뀐 것 처럼> 사람이 바뀌고, 거주지가 바뀌고 내 껍데기가 바뀌었다. 고여있어 괴로웠던 맹목의 공간을 부수고 나와서, 난생처음 스스로를 위한 일들을 해내었다. 맹목의 공간에 있던 관계가 희미해지면서 나 자신은 뚜렷해졌다.
그러나 프레임 밖은 관계는 차갑고 소모적이다. 선명해졌다 느낀 본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미물이었다. 관계 안에서 스스로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난 진정 자유로운가?” 사실 관계의 상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맹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노력이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참 우습다. 솔직함은 폭력이지만, 침묵은 가스라이팅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 멈출 수 있는 우리의 용기에 고마워한다. 직면하는 순간, 맹목의 공간을 다시 신뢰의 공간으로 재건해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에겐 함께한 13년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아직 아주 여리고 약한 존재를 보호해야 하는 부모니까. 이 이야기는 그저 결혼 10년간 안 싸우다 지난 1년간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일뿐이다. “아, 나도 결국 다정한 대화를 쓰고 싶구나.” 우리는 아직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5년전 생일 선물받는 카드의 메세지를 본다. 다정한 그시절이 맹목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아차린다.
뭐, 이 또한 “어떻게든 되겠지.”
photo by 인생정원사
이어지는 글
1. 길고양이들의 인터스텔라
2. 맹목의 공간을 경계하다
4. 병원, 가지 않을 결심